모로코(Morocco)

지중해의 아랫입술에 위치한 매혹적인 모로코는 회교적 신비에 가득차 있어 마치 신화와 현실 사이에 떠 있는 요술 양탄자 같은 나라이다. 탄제르(Tangier), 카사블랑카(Casablanca), 마라케쉬(Marrakesh)- 이런 이름만 들어도 마치 코 끝에 맛있는 냄새를 맡은 것처럼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모로코는 오랫동안 신비스럽게 여겨져왔다. 물론 그럴만하기 때문이었지만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이라면 오히려 '진정한' 모로코가 사라졌다고 개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로코의 독특한 생활사와 찬란한 예술을 격찬하고 있다. 아마도 모로코의 실체는 그 중간 어디일 것이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유럽에서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여서 여행하기에 아주 친근하고 활기차고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모로코 여기저기 있는 야외시장은 깔개며 목제품, 보석들로 가득 차 있다. 해쉬쉬 다음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것은 가죽제품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부드럽다고 정평이 나있다.

 모로코지도(12K)

통계 자료

정식국명: 모로코 왕국(Kingdom of Morocco)
면적: 447,000평방킬로
인구: 2천 9백만명
수도: 라        바트(Rabat)
인종: 아랍 55%, 버버(Berber) 44%, 외국인 0.7%, 유태인 0.2%
언어: 공식어는 아랍어이고, 버버방언과 불어, 스페인어 영어가 함께 쓰인다.
종교: 이슬람
정체: 입헌 군주제
군주: 모하메드 6세

지리 및 기후

매우 다양하다. 모로코는 클럽메드 관계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거의 모든 요건- 모래사장, 바다,눈-등을 갖추고 있다. 남쪽 해안은 서부사하라의 가장자리까지 뻗어있는 반면 북쪽으로는 모로코인구의 대부분이 종종 만년설이 쌓이는 아틀라스 산맥(Atlas mountains) 기슭에서 살고 있다. 아틀라스 산맥은 모로코를 난폭한 이웃국가인 알제리로부터 보호해주는 완충제역할을 하고 있다. 산맥과 모로코의 대서양쪽 해변 사이에는 비옥하고 관개가 잘 된 평야와 고원이 자리잡고 있다. 남쪽 앤티-아틀라스 (Anti-Atlas) 가장자리에는 마치 바닥을 보이며 흐르는 강물처럼, 골짜기가 점차로 사라지면서 광대한 사하라 사막의 모래와 돌바닥으로 이어진다.

'가장 더운 나라중의 가장 추운나라' 라는 명성에 걸맞게 모로코의 추운기간은 아프리카 같지가 않다. 특히 고지대의 겨울은 북극기후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여름의 산기온은 낮에는 덥고 저녁에는서늘하다. 11월에서 4월 사이가 우기라고는 하나 가끔 가벼운 비를 뿌리는 정도이다.

역사

다른 여러 북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모로코는 역사이래 한 종족에 의해서 지켜져왔다. 버버족(혹은 땅의 사람이란 뜻으로 이마지엔)은 수천년전에 이곳에 정착했고 한때는 모로코와 이집트 사이의 일대를 지배하기도 했다. 버버족은 여러 씨족, 부족으로 나뉘어져 항상 독립을 갈망했다. 아프리카 국가중 가장 매력적인 문화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독립심 덕분일 것이다. 페니키아인들도 버버족을 몰아내지 못했고 심지어 로마인들도 BC 146년 카르타고 함락후 조차도 버버족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못했다.

로마인들은 언제나처럼 평화시대를 제공했고 그동안 많은 도시들이 세워졌다. 따라서 해변평야에 살던 버버족은 도시 거주인이 되었다. AD 3 세기쯤 기독교가 전래되었고 원래 중추적 권위를 싫어하는 버버족은 자신들만이 참 교회를 이룬다고 믿던 도나투스(Donatus) 파를 따랐다. 7c 아랍군사가 아라비아에서 떨쳐 일어났을 때 이슬람교가 세계무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아랍군사는 순식간에 이집트를 정복하고 8c초 북아프리카 전역을 지배했다. 9c 무렵 북아프리카는 점차로 분열되기 시작했고 점차로 통일 모로코로 향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아랍족의 침략으로 인한 혼돈속에서 정통 버버족의 운동이 살아났고 그 기운이 모로코, 무슬림(Muslim), 알루시아(Alusia)까지 퍼졌다. 알모라비드(Almoravids)가 마라케쉬를 수도로 정했지만 곧 알모하드(Almohad)가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알모하드 지배하에서 전문적인 행정사무가 정비되었고 프앤에그라베스(Fès), 마라케쉬, 틀렘첸(Tlemchen), 라바트등이 그 문화적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결국 스페인에서의 기독교의 승리와 이슬람교도가 물린 과다한 세금 때문에 무슬림(즉 무어족) 지배는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메꾼것은 모로코 오지에서 온 메레니드(Merenids)족이었고 모로코 영토는 다시 번영기를 맞았으나 1492년 스페인이 기독교에 패배하자 반란이 일어나 메레니드의 100년 통치도 끝나게 되었다. 수명이 길지 않은 왕조들이 생기고 사라지기를 거듭한 후 1630년 알라위트(Alawite) 왕조가 확고한 통치를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순조롭지는 않을지라도 이 왕조는 모로코를 약 300여년간 독립국가로 유지시키고 있는 실리적인 왕조이다.19c 후반 유럽 상인들이 들어오면서 식민지화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프랑스, 스페인, 독일이 모로코의 전략적 위치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탐내기 시작했다. 결국 프랑스가 1912년 모로코 거의 전역을 점령했고 스페인은 해안의 조그만 보호령에 만족해야 했고 탄제르는 국제구역으로 선포되었다.

초대 프랑스 총독이었던 마샬 료띠(Marshal Lyautey)는 비교적 아랍문화를 존중했다. 그래서 모로코의 시가지를 붕괴하고 프랑스식 신시가지를 건설하라는 본국의 압력에 잘 대처했다. 그는 대서양 연안의 라바트를 새 수도로 정하고 카사블랑카 항구를 개발했다. 술탄도 명색으로나마 존속되도록 했다. 하지만 그 후의 총독들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다. 무턱대고 프랑스식을 강요한 덕에 1926년 리프산맥의 사람들이 버버족학자인 압드 엘-크림(Abd el-Krim)의 지도하에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반란은 프랑스와 스페인 군사 2만 5천명이 투입되고서야 겨우 진압할 수 있었다.

1930년대에는 2십만여명의 프랑스인이 모로코로 이주해왔다. 2차 세계대전당시 모로코는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술탄 모하메드 5세(Mohamed V)는 독립군을 지지하여 마침내 1956년 모로코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 과정에서 탄제르는 반환되었지만 스페인에서 세우타(Ceuta)와 멜릴라(Melilla) 같은 북쪽도시들의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아직도 아프리카 대륙의 미약한 스페인 영토로 남아있다.    

모하메드 5세는 1957년 자신을 왕으로 격상시켰고 4년뒤 아들인 하산2세(Hassan II) 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하산 2세는 스페인 영역이던 서사하라까지 평화행진을 함으로서 모로코 국민의 가슴속에 깊은인상을 심어주었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무려 35만이 넘는 자원병력의 힘으로 하산의 추종자들은 풍부한 광산지대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토착 사라위스(Sahrawis)들을 정복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 십만여명이 넘는 거주자들이 독립을 원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사구이아 알 함라(Saguia al-Hamra) 와 리오 드 오로(Rio de Oro)가 이끄는 서 사하라 인민전선은 그 점령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모로코를 상대로 길고 섬뜩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1991년 유엔이 휴전을 중재하였고 최근에 그 문제를 그대로 놔두기로 결정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모로코의 힘과시 덕택에 서사하라의 공식적 지위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로코의 서사하라 침략때 모로코인들은 열광했지만 이웃국가인 알제리아(Algeria)는 서사하라 만큼이나 심기가 불편했다. 하산과 알제리아의 관계는 그때부터 쭉 좋지 않은 상태이다. 현재 개헌에도 불구하고 하산은 다소 유서깊은 절대군주로 남아있다.

경제

GDP: US$87.5 billion
1인당 GDP: US$ 3100
인플레이션 :6%
주요산업: 농업, 제조업, 수산업, 관광업
주요교역국: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이라크

문화

아랍문화의 기준에서 본다면 모로코는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예술적 전통을 이뤄왔다. 그 다양함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무슬림 스페인에서 발달한 고전음악이나 변변찮던 버버족의 설화음악에서부터 현대 아프리카, 프랑스, 팝, 락의 퓨전음악까지의 음악이다. 알제리아 음악에 더 가깝긴 하지만 라이(rai) 음악은 모로코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라이음악은 아랍아프리카의 리듬이 두드러지긴 하지만(베두인 음악에 기원을 두고 있으므로) 다양한 전자악기를 사용하여 최면효과를 내는 가장 서구화된 스타일을 추구한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모로코에서는 춤을 자주 볼 수 없다. (율법상, 이슬람 여인은 춤을 추지 않는다.) 그래서 히두스(Hidous)라고 알려진 원형댄스가 버버족에서 그나마 상징적 원시무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벌거벗고 닭의 목을 치는 따위의 이식은 더 이상 없다. 모로코의 근간산업은 수공업이다. 마론퀴네리 (Maronquinerie-가죽제품)은 16c부터 가장 선호받는 교역품이었다. 카펫, 도자기, 보석, 청동제품, 목제품 역시 품질이 뛰어나다. 인테리어는 그림이나 액자를 실내에 많이 걸어놓는 것이 유행이며 메데르사(Medersa)나 다른 종교건물이나 부유한 집에서는 정교한 타일 장식을 많이 쓴다. 회교여인으로 하여금 몰래 거리풍경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베일인 마쉬라비야(mashrabiyya)도 여전히 건재하다. 이런 것들은 비록 기념품으로 살 것들은 못되지만 모로코의 수공업이 관광상품에만 의존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국의 입장에서 보면 모로코는 모둔 종류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 같다. 프랑스의 네오바로크 화가인 유진 드라크로아(Eugene Delacroix)는 1830년대 모로코를 방문한뒤 모로코를 그리기 위해 몇통의 물감을 쏟아부었는지 모른다. 시장풍경, 하렘생활, 사자 사냥등이 그의 캔버스를 장식했다. 그 당시엔 드라크로아가 너무 앞서나갔는지 모르지만 100년뒤에는 헐리우드가 무엇에 홀린 듯 모로코 숭배자가 되었다. 모로코에서 처음 촬영된 영화는 말린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였고 1942년 카사블랑카가 만들어졌다. 피터 오 툴(Peter O'Toole)이 아라비아의 로렌스 촬영으로 모로코를 활개치고 다니는 바람에 모로코는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환상의 나라로 부풀려졌다. 모로코에서 쓰이는 아라비아어(다리자-darija)는 중동에서 스이는 아라비아어와 상당히 다르다. 시골이나 산맥에서는 여러종류의 버버방언이 쓰인다. 모로코는 생활, 관습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이슬람문화를 창조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남성이 모든 면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여행자가 보기에는 공공생활에서의 남녀차별이 엄격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그런 불일치가 더하다.모로코의 음식은 특이하지는 않지만 맛이 좋고 든든한 편이다. 주식은 쿠스쿠스(couscous)라는 것인데 세모리나(semolina)를 곱게 갈은 것으로 보통 야채와 양 캐서롤과 함께 나온다. 스위트 민트차를 즐겨마시지만 그렇다고 술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모로코엔 금주령이 없다.

축제 및 행사

모로코는 그야말로 정통교리와 토속관습이 만나 섞여버린 곳중의 하나라고 할만하다. 정통 수니파 이슬람교(Sunni Islam)는 성자숭배를 금하고 있지만 기독교가 그러하듯이 이슬람교 역시 많은 종파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성자숭배축제가 많은 편이다. 축제일은 정해진 날짜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주변에 물어보는 것이 좋다. 5월경에 무세움(Mousseum)이라 불리는 시디 모하메드 마 알 아님(Si야 Mohamed M'a al-Anim)를 숭배하는 축제가 있는데 이 때 블루 피플(사하라의 무어인)과 다른 여러 부족이 교역을 위해서 모인다. 마라케쉬의 국립민속축제는 10일동안 열리는데 전국의 댄서, 음악가들의 무리들이 참석한다. 10월에는 에르푸드(Erfoud)라는 북쪽의 작은 마을에서 전형적 사막과일인 데이트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종교적 휴일을 제외한 5일의 국경일중의 하나인 독립일 축제는 11월 18일이다.

여행자 정보

비자: 별도 비자없이 90일 체류가능.
보건위생: 북쪽 해안에 말라리아의 위험이 있지만 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그나마
안전한 지역이다. 의료비는 매우 비싼 편이다.
시간: 세계 기준시. 한국보다 9시간 늦다.
전압: 220V, 50Hz (오래된 지역은 110V도 있다. )
도량형: 미터법(도량형 환산표 참조)
관광객: 연간 2백만명

경비 및 환전

통화: 덜햄(Dr), 1덜햄은 100상띰(centime)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US$5-10
중급 식사: US$10-15
고급 식사: US$15-30
저렴한 숙소: US$ 15-25
중급 숙소: US$25-50
고급 숙소: US$50-85
편안하게 여행하려면 하루 US$ 40-50 정도, 호스텔에 묵거나 야영을 한다면 US$ 15-20 정도 예상하면 된다.맥주($3)나 다른 수입술은 비싼편이다. 교통비는 대체로 싸고 다양하다. 가장 싸고 빠른 것은 자전거이다.

은행이 많이 있어서 환전, 여행자수표 바꾸기, 카드로 현금인출이 가능하다. 거의 모든 은행이 환전율이 비슷하고 거래가 신속하다. 그 중 최고의 은행은 방끄 마로카인 뒤 꼬메스 엑스뜨앤에라큐떼뤼에 (Banque Marocaine 여 Commerce Extérieur BMCE)이다. 신용카드 현금인출이나 ATM현금인출은 1.5%의 수수료가 붙는다.다소 호화로운 식당에서는 팁을 주는데 10-15% 정도면 무난하다. 그보다 검소한 식당이나 까페에서는 1,2 덜햄정도면 충분하다. 어떨때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팁 때문에 다른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짐꾼, 가이드, 잡상인들이 팁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조금씩 주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팁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여행 시기

북쪽의 겨울날씨는 춥고 습하지만, 해안쪽 기후는 일년내내 여행하기 좋은 편이다. 저지대는 10월에서 4월사이가 선선해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좋다. 이 때는 낮기온이 30'c 정도로 따뜻하거나 약간 더운 정도이고 밤기온은 15'c 정도로 선선하거나 약간 쌀쌀한 정도이다. 고지대는 방한복이 필요하다 구릉지쪽으로 여행을 간다면 스키시즌이 12월부터 3월까지이므로 염두에 두는 것도 좋다. 6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의 성수기에 도보여행을 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

주요 여행지

라바트

식민지시대 4번째로 세워진 도시인 라바트는 오랜 역사와 고도로 현대화된 현재가 흥미롭게 섞여있는 도시이다. 라바트는 그 당시 술탄이 카스바요새를 대 스페인전에서 기지로 사용했던 12c에 가장 영광을 누렸다. 라바트의 볼거리는 이 당시에 세워진 것들이다. 17c초에는 스페인에서 쫓겨난 회교도들의 은신처이다가 프랑스 점령이후 수도가 되었기 때문에 라바트의 분위기는 이슬람과 유럽의 것이 거의 동등한 비율로 섞여있다. 회교사원이 하나 있으면 그 주위에 유럽식 까페가 서너곳 있는 정도이다.라바트인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버는 일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시장통을 한가롭게 구경할 수 있다. 라바트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뚜르 하산(Tour Hassan) 이라고 하는 야쿱 알 만수르(Yacoub al-Mansour)가 착공한 회교사원의 미완성 첨탑이다. 공사는 1755년 지진으로 중단되었다. 그 옆에는 현왕의 아버지인 모하메드 5세의 능이 있다.         대서양을 바라보는 방파제위에 세워진 카스바 데 쥬다이아(Kasbah des Oudaias)안에는 전에는 궁이던 전통예술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 경계벽 너머에는 옛도시 살라(Sala)의 자취가 남아있다. 쉘라(Chella)라고도 알려진 이 도시에는 모로코 최고의 고고학박물관이 있다. 명소인 중앙공원- 쟈댕 뜨리앙글 드 뷔(Jardins Triangle de Vue)와 중앙철도역 사이에는 라바트의 호텔와 식당이 밀집해 있다. 이곳의 까페와 바들은 맥주, 카밥, 피자, 올리브, 아이스크림등을 판다. 모하메드 5세 국제공항이 도시 동쪽으로 위치해 있고 셔틀버스가 많이 운행된다.

카사블랑카

전세계의 모든 도시들 중 헐리우드는 바로 이곳을 택해 이국적 식민지땅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만약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를 보기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모로코 최대도시이자 산업의 중심지인 카사블랑카는 이미 거대도시이다. 말끔한 수트와 세련된 선글라스들 사이에서 모로코 전통의상인 뷔르누스(burnous)가 오히려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항구도시는 프랑스가 재건하기 전까지 침체일로를 걷고 있었다. 프랑스는 큰 길을 닦고 시민공원을 만들고 모레스크(무어인)들에게 공공건물을 할당했다.카사블랑카의 성지인 유서지구도 한번 둘러볼 만 하다. 하산 2세 사원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 쁠라스 모하메드 5세(Place Mohammed V)광장에 가면 모로코에서 가장 인상깊은 모레스크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카사블랑카는 모하메드 5세 공항을 라바트와 공유하고 있으며 유럽과 중동으로 정기운행을 한다.

마라케쉬

모로코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로서 시장과 축제로 유명한 전 수도로서, 마라케쉬는 더할 나위없이 생기발랄한 도시이다. 가장 번화한 중시지는 쁠라스 드제마 엘 프나(Place Djemaa el-Fna)라는 큰 광장이다. 야외음식점이 줄지어 있고 군침을 돌게하는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저글러, 이야기꾼, 뱀장수, 마술사, 서커스, 광인들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 수크스(시장)은 모로코에서 최고이며 가격이 저렴한 호텔들도 아주 많다. 유서지구의 볼거리는 알모라비드 스타일의 쿱바 바아딘(Koubba Ba'adiyn) 서원 별채, 웅장한 쿠투비아(Koutoubia)서원, 그리고 모로코 예술박물관인 빨레 다르 시 사이드(Palais Dar Si Said) 등이다. 내륙도시인 이곳으로 카사블랑카와 라바트에서 기차와 버스가 정기운행한다.

프엔에그라베스(Fe's)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도시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모로코의 상징적 주임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길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웅장함이 이곳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성지인 엘 발리(el-Bali) -올드 페그라베스-는 현존하는 가장 큰 중세도시들 중 하나이다.         이 성지는 성벽과 큰 문으로 둘러싸여져 더욱 웅장해 보인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여느 도시들과는 달리 엘 발리는 한번도 벽이 무너진 적이 없었다. 대신 거주민이 서남쪽으로 이동해서 구릉지대에 퍼져 새 페그라베스의 북남쪽으로 원호모양을 이루었다. 9400개의 거리와 골목들로 이루어진 옛도시에는 1350년대에 지어진 높은 메데르사 부 이나니아(Medersa Bou Inania) 신학대학이 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헤너 수크(henna souq)는 머리 염색재료와 여성의 손발 문신재료로 가득하다. 바로 옆에 있는 페그라베스 엘 즈디드(Fès el-Jdid)는 유태인 사회의 중심으로 볼만한 건물들이 많이 있다. 두도시사이에 있는 다르바타(Dar Batha) 박물관이 있다. 라바트, 마라케쉬, 탄제르에서 열차를 타는 것이 이곳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방법이다.

탄제르

주로 이 항구를 통해 여행자들이 입구가는 매력적인 도시인 반면 세계 최고의 사기꾼들의 온상이기도 하다. 모로코 북부에 자리하고 있는 이 도시는 국제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강하다. 암거래로도 유명하다. 도시 중심인 쁘띠 소꼬 (Petit Socco)가 관심의 중심지이다. 탄제르가 중립국제구역이었을 때 이곳이 저급한 문화의 배경역할을 했었고 현재도 그 자취가 남아있다. 아동성학대 장면을 말하지 않더라고 여행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것들이 다. 전 술탄의 궁이었다가 현재는 박물관이 된 17c 다르 엘 마크젠 (Dar el-Makhzen)과 근처에 있는 미국 공사박물관(American Legation Museum)들이 그것인데 이곳은 모로코가 미국이 독립한 것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인식한 나라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라바트에서 기차로 5시간 거리이고 스페인이나 지브롤터에서 배를 타면 금방닿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토드라 계곡(Todra Gorge)

하이 아틀라스(High Atlas)의 마을인 티네히르(Tinerhir) 옆, 퍽박한 돌무더기산이 가장자리를 장식한 진흙벽돌집들과 울창한 종려나무 계곡의 가장자리에 모로코 최고의 천혜의 장관이 있다. 바로 토드라 계곡이다. 300미터가 넘는 곳에서 시작하여 가장 좁은 곳은 10미터 안팎으로 끝나는 계곡,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주계곡을 흝는데는 반나절이면 족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여행자라면 티네히르까지 계곡을 타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할 것도 많다.

계곡의 수직바위 타기와 캠핑하기등인데 계곡안과 주변에 호스텔도 많다. 좀더 모험을 즐겨보고 싶다면 드문드문한 마을과 하이 아틀라스, 미들 아틀라스 산맥을 연결하는 어려운 스키활주로를 타봐도 좋을 것이다. 정기버스가 마라케쉬와 에르 라히디아(Er-Rachidia)사이에서 티네히르를 지난다.

에사우이라(Essaouria)

개별여행자에게 인기있는 해변마을이다. 팩키지 여행상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이곳의 아름다운 해변이 남쪽으로 수킬로 미터나 뻗어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마을은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휴식.이곳이 요새는 포르투갈, 프랑스, 그리고 버버의 군사건축의 혼합물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규모의 웅장함이 이 마을의 신비스러움을 더해준다. 이 마을이 면한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스칼라 뒤 뽀(Skala du Port)는 경치가아주 좋아 오손 웰스(Orson Welles)가 그의 영화 오델로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볼루빌리스(Volubilis)

메크네그라베스( Meknès)에서 33킬로미터 정도가면 모로코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로마의 흔적이 나온다. 볼루빌리스는 기원후 2,3,c 경에 세워졌다고 여겨지지만 최근의 발굴결과 그 이전 카르타고의 무역상들이 이미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호텔은 하나밖에 없지만 야영지는 꽤 있는 편이다.

타프라우트(Tafraoute)

대서양 연안의 그다지 볼 것 없는 마을이지만 마을을 둘러싼 낮은 산이나 버버마을가지 하이킹 여행을하기에 그저그만이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면 다소 기이한 그림이 그려진 바위들이 나온다. 벨기에 화가들이 이 지역에만 있는 둥근 바위를 캔버스 삼아 그린 것들이다.

레저스포츠

모로코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여행이 가능하다. 가장 인기있는 것중 하나는 하이 아틀라스 산맥에 있는 에벨 툽칼(Jebel Toubkal)까지의 하이킹이다. (2일 소요). 2일이상 소요되는 타케드디르트(Tacheddirt)에서 임릴(Imlil)까지의 하이킹은 하이아틀라스의 눈까지 올라간다. 그곳에 올라가면 스키도 고려해볼 수 있다. 마라케쉬에서 7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우카이메덴(Oukaimeden)은 인기있는 스키장소이다. 조금 낮은 곳에서 즐길수 있는 스포츠로는 하이아틀라스 주위에서 급류타기와 남쪽의 서프 낚시가 있다. 에사우이라 해안의 바람은 서핑에 좋고 윈드서핑에는 그저그만이다. 사실 이곳은 윈드서핑 지역으로만 분류되기도 한다.

모로코로 가는 길

카사블랑카, 탄제르, 아가디르에 국제공항이 있기 때문에 유럽, 아프리카, 중동과 잘 연결되어 있다. 자가용 운전도 가능하다. 스페인의 알제리카스(Algericas)와 탄제르, 세우타사이를 운행하는 배가 차도 운송하기 때문이다. 지브롤터에서 탄제르까지 주 2회 선박여행도 가능하다.

국내 교통편

만약 시간은 급하고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것도 모로코 곳곳을 둘러보기에 좋은 방법이다. 오삐스 나쇼날 데 슈맹 드 페(Office National Des Chemins de Fer) (ONCF) 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현대화된 철도 시스템을 운행해 모로코내 주요도시 거의를 연결한다. 밤여행에는 침대차가 제공되므로 대체로 버스보다는 기차가 안락하고 빠르다. 열차는 남쪽 마라케쉬까지 운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버스가 기차를 놓쳤을 때 마지못해 타는 정도로 나쁜 것은 아니다. 버스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잘 연결되어 있고 효율적이다. 렌터카는 결코 싸지 않지만 영세업자와는 흥정도 가능하다. 기름은 어디서든 넣을 수 있는 편이다. 명심할 것은 도로 곳곳에 경찰이 있고 도로봉쇄도 잦다는 점이다.조금 큰 도시는 공공버스가 있고 표는 2 덜햄 정도이다. 주요도시나 조금 큰 마을에서는 작은 택시를 쉽게 볼 수 있다. 택시는 승객 3명까지 태우도록 허가가 난 것이며 일사병이나 거리의 사기꾼들로부터 피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