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Uganda)

독립 이후 우간다의 계속된 비극은 서구 언론의 주요 기삿거리였고 그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우간다를 가지 말아야 하는 불안정한 나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우간다의 대부분 지역은 여러 해 동안 아주 안정적이며 국내 정세의 변화도 놀랄 필요 없을 만큼 적다. 현재 캄팔라(Kampala)는 새로운 우간다의 현대적이고 분주한 수도이며, 우간다는 아프리카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 우간다의 아름다운 산, 트레킹, 산 속에 사는 고릴라 등이 여행자들을 끌어당기는 매력 포인트다.

독립 이후 우간다는 부유하고 단결된 나라였다. 윈스턴 처칠은 우간다의 아름다움에 감동해 이 나라를 "아프리카의 진주"라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이 되자 우간다는 부족간의 원한, 족벌주의, 엄청나게 타락한 정치, 학살, 군인 독재 등으로 인해 산산이 분열되고 파괴되었으며 파산 지경에 달했다. 학살과 만행에도 불구하고 우간다인들은 이러한 위기를 아주 훌륭하게 견뎌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밋빛 안경을 쓰고 보더라도 우간다의 엄청난 외채, 에이즈의 만연, 바람직하지 못한 인권 상황 등은 심각한 문제다.

우간다지도 (15K)


통계 자료

정식 국명: 우간다 공화국(Republic of Uganda)
면적: 237,000 sq km (92,300 sq mi)
인구: 22,804,973 명
수도: 캄팔라(Kampala)
인종: 바간다 족(Baganda,) 랑고 족(Lango), 아콜리 족(Acholi), 피그미 족(Pygmy), 유럽인,
아시아인, 아랍인
언어: 영어, 스와힐리 어(Swahili), 그 외 루간다(Luganda)어 같은 30여 가지 토착어
종교: 로만 카톨릭(33%), 프로테스탄트(33%), 토착 신앙(18%), 이슬람교(16%)
정체: 공화제
대통령: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

지리및 기후

좁은 저지대 해안선과 더불어 평원, 호수, 산맥 등이 어우러진 우간다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땅떵이의 상당부분은 고원평지로 그 중 일부는 반 사막 지형이며 나머지는 사바나와 점점이 흩어진 관목 숲들이다. 가장 높은 산은 메루(4556m)와 킬리만자로(5895m,아프리카 최고봉)로 케냐와 접경을 따라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역사

우간다에서는 14세기에 토착 왕국들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바간다(Baganda) 왕국, 버뇨로(Bunyoro)왕국, 토로(Toro)왕국, 안콜레(Ankole)왕국, 버소가(Busoga) 왕국 등이 있었다. 이어지는 세기 동안 바간다 왕국이 지배적인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19세기까지 우간다에는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거의 없었으므로 바간다 부족은 복잡한 사회 계급 제도를 만들어낼 만큼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잉여 농산물을 생산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프리카 해안과의 교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접촉이 이루어진 것은 결국 19세기 중반 아랍 상인들과 유럽인탐험가들에 의해서였는데, 유럽인들은 상아와 노예를 찾아 왔던 것이다.

유럽 각국의 아프리카에서의 영역을 규정한 1890년의 베를린 조약(Treaty of Berlin) 이후 우간다, 케냐, 잔지바르 군도(islands of Zanzibar), 펨바(Pemba)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식민지 관리들은 환금 작물로 커피와 목화를 도입하고 간접 통치 정책을 택해 여러 토착 왕국에 상당한 자치권을 주었지만, 공직을 맡길 사람으로는 바간다 부족을 선호했다. 바간다 추장 수천명은 영국으로부터 거대한 토지를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했다. 식민 통치 하에서 일자리를 얻거나 바간다 족이 지배하는 상업 영역에 접근할 수 없었던 다른 부족들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른 영역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예컨대 아콜리(Acholi)족과 랑고(Lango)족은 군대에서 지배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이로서 독립 후에 우간다를 산산이 분열시켰던 부족 간의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던 것이다.

1950년대 중반 랑고 족 교사였던 밀톤 오보테(Milton Obote) 박사는 느슨해져 있던 연합 세력을 결집해 바간다 부족에게 자치권을 주겠다는 약속 하에 1962년 우간다를 독립시켰다. 그러나 당시는 우간다가 독립을 성취하기에 별로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이웃한 수단 남부, 자이레(현제의 콩고), 르완다에서 내전이 진행중이었고 피난민들이 우간다로 밀어닥쳤다. 또한 오보테가 카바카(kabaka, 바간다 부족의 왕)와 권력을 나눌 마음이 없다는 것도 곧 명백해졌다. 오보테는 재빨리 움직여 내각 장관 중 다수를 체포하고 군사 책임자였던 이디 아민에게 카바카의 궁전을 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오보테는 대통령이 되었고 바간다 군주제는 폐지되었으며 이디 아민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상황은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오보테가 모든 권력을 대통령이 독점하도록 헌법을 고쳤던 것이다. 또한 그는 US$ 500만에 달하는 외국인 자산을 보상 없이 국유화하기 시작했다. 1969년, 아민은 금융 스캔들에 연루되었고 압력이 가해지자 쿠데타를 일으켰다. 오보테는 망명했고 이로서 우간다 최초의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다.모든 정치 활동은 신속히 금지되었고 군대에는 현 체제에 반대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누구나 사살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후 8년 동안 줄잡아 300,000명의 우간다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다수는 아주 참혹한 방식으로 살해당했다. 아민의 주요 공격목표는 콜리 족과 랑고 족, 전문 직업인들과 70,000명에 달하는 아시아계 주민들이었다. 아시아계 주민 중 대다수는 1912년경부터 우간다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다른 영국 식민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 1972년 아시아계 주민들은 90일 내에 입은 옷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고 우간다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동안 경제는 무너졌고 사회 기본 시설은 퇴락했다. 군인들은 고기와 상아, 가죽을 얻기 위해 수가 많던 야생동물을 무자비하게 사냥했으며 관광 산업은 완전히 붕괴 상태가 되었다. 국경을 넘는 피난민의 행렬은 홍수를 이루었다. 인플레이션이 1000%에 달했고 결국은 국고가 텅 비어 군인들에게 봉급도 지불하지 못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군대가 부족간의 다툼으로 분열되고 불안해지자 아민은 전환점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바보스럽게도 탄자니아와의 전쟁을 선택했다. 탄자니아군은 우간다 군대를 가볍게 물리치고 우간다 중심부까지 진격해왔다. 12,000명 가량의 탄자니아 군인들이 우간다의 재건을 돕고 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우간다에 남아 우간다인들을 괴롭혔다.

1980년 우간다에서는 군정 통치가 시작되었고 군정은 그 해 말로 우간다 대통령 선거일을 확정했다. 탄자니아에 망명해 있던 오보테가 우간다 전역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돌아와 노골적으로 조작된 선거에서 승리를 차지했다. 아민과 마찬가지로 오보테도 특정 부족을 편애했다. 남부 부족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공직자, 군인, 경찰 중 대부분이 북부 부족에 속하는 오보테의 지지자들로 교체되었으며 다시 한번 감옥은 가득 찼다. 잔악 행위에 대한 증언이 나라 전역에서 터져 나왔고 시체 구덩이가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다. 1985년 중반 오보테는 티토 오켈로(Tito Okello)가 주도한 군대의 쿠데타로 물러났다.

1980년 오보테가 대통령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정 부족에 편중된 오보테 정부에 반대하는 게릴라 군대가 우간다 서부에서 조직되었다. 이 군대를 이끈 사람은 요웨리 무세베니로, 그는 아민의 통치기간 동안 탄자니아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27명으로 시작했던 게릴라 세력은 20,000명에 달하게 되었고 그들 중 대부분이 10대의 고아들이었다. 처음에는 NRA(National Resistance Army)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게릴라 세력에게 별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오보테가 축출되고 오켈로가 정권을 잡을 무렵 NRA는 우간다 서부의 꽤 넓은 지역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NRA와 오켈로 정부군 사이에 전투가 치열하게 계속되었고 1986년 1월이 되자 오켈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NRA는 세력을 총집궐해 수도를 점령했다.

무세베니는 마르크스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지도자임이 드러났으며 내각에 골수 보수인사들을 상당수 임명하고 우간다의 영향력 있는 카톨릭 공동체를 다시 조직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는 동안 300,000명 가까운 우간다 피난민들이 수단 국경을 넘어 우간다로 돌아왔다. 경제가 나아지기 시작했고 원조와 투자도 돌아왔다. 무세베니는 1994년의 민주적인 '무정당' 선거에서 승리했고 1996년에도 재선되었다. 1990년대 후반 무세베니의 골칫거리 중 하나는 다양한 반정부 반역 세력이 많은 북부 지역인데, 이러한 반정부 세력으로는 수단의 이슬람 정부와 연합한 로드 레지스탕스 아미(Lords Resistance Army) 같은 기괴한 기독교 집단이나 이디 아민 시절의 전(前) 장관이 이끄는 웨스트 나일 뱅크 프론트(West Nile Bank Front) 등이 있다. 오늘날 우간다의 에이즈 및 HIV 감염 정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대충 어림잡아 150만 정도의 우간다인이 감염되어 있는것으로 보인다. 마을 중에는 감염률이 너무 높아 네 명 중 한 명은 감염상태인 곳도 있다.

1996년의 선거는 우간다가 부흥의 길로 나가는 마지막 단계였던 것으로 보이며, 우간다의 악명 높은 인권 상황에도 불구하고 1998년에는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우간다를 방문했다. 1999년 8월 우간다는 콩고 평화 협약에 서명했다.

축제 및 행사

우간다에서는 크리스마스, 부활절, 예수 수난일 등의 기독교 축제일에 축하행사를 연다. 이슬람교 신도들은 이슬람 달력에 따라 이슬람 축제일을 기념한다. 새 달을 보는 날이라는 하리 라야 푸아사(Hari Raya Puasa)는 이슬람 달력의 첫 번째 날이며 단식하는 달인 라마단(Ramadan)의 끝을 의미한다. 3월 초에는 전국에서 여성의 날(Women's Day) 행사가 열린다. 그 외에도 독립이나 내전 기간의 사건과 관련된 많은 축제일이 있다. 1월 26일은 NRM 기념일(NRM Anniversary Day)이며, 6월 3일은 순교자의 날(Martyrs' Day), 6월 9일은 영웅의 날(Heroes' Day), 10월 9일은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이다.

여행자 정보

비자: 세계 어느 국가의 국민이건 비자가 필요하며 최근 10년 동안 황열병 예방접종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국제 건강 증명서(International Health Certificate)도 있어야 함
건강상 위험: 주혈흡충병, HIV/AIDS, 트리파노소마증(수면병), 말라리아, 황열병
시간: 협정세계시에 3시간을 더함
전기: 220V, 50Hz
도량형: 미터법

경비 및 환전

통화: 우간다 실링(Uganda shilling, USh)
저렴한 현지 식사 : US$2-8
일반 레스토랑에서 식사: US$8-15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US$15 이상
저렴한 숙소: US$10-20
중급 호텔 : US$20-50
최고급 호텔: US$50 이상
암시장을 일소하고 외환 관리국(forex bureau)이 들어선 이후 우간다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우간다에서 안락한 여행을 즐기려면 하루에 최소한 US$75가 필요하다. 중급 수준의 음식과 숙박을 위해서도 적어도 하루에 US$40은 있어야 한다. 겨우겨우 여행하는 배낭여행자라 해도 하루 US$20은 필요하다. 국립공원의 입장료가 하루에 1인당 US$15 정도다.

우간다 실링은 안정적이고 쉽게 외국 돈으로 바꿀 수 있는 통화로 매일매일의 환율 변동이 거의 없다. 어디에서 환전하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외환 관리국이 일반적으로 은행보다 나은 환율을 제시한다. 외환 관리국은 국경 사무소와 주요 도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환전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경비 대부분을 여행자 수표로, 약간만을 현금으로 가져오는 것이고 특히 미국 달러, 영국 파운드, 남아프리카 랜드(rand) 등의 화폐로 가져오는 것이 좋다. 큰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만 신용 카드를 받는다.

우간다에서는 팁을 줄 필요가 없지만 아주 괜찮은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되면 팁을 주는 것은 자유다. 시장이나 거리의 노점상, 민예품점 등에서 물건을 살 때는 흥정을 하는 것이 관례다.

여행 시기

우간다를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12월 말에서 2월 말까지인데, 연중 이 시기가 일반적으로 건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물론 덥기는 하다). 차선책으로는 6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의 기간이 있다. 하지만 이런 건기에 야외에서 트레킹 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 것!

주요 여행지

캄팔라(Kampala)

현대적이고 분주한 수도 캄팔라는 내전 기간 동안 많은 고난을 겪었다. 무세베니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이후 10여년 동안 캄팔라는 약탈당한 공터에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나라의 수도에 어울리는 번영하는 도시가 되었다. 전기가 들어왔으며 수도꼭지에서는 깨끗한 물이 쏟아져 나온다. 부서진 건물들은 사람이 살 수 있게 수리되었고 많은 새 건물이 지어졌으며 가게와시장에는 다시 물건들이 들어찼다. 오늘날 캄팔라에는 카지노, 나이트클럽, 값비싼 레스토랑까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캄팔라는 일곱 언덕 위에 지어졌다고 말해지지만, 도시의 중심지는 그 언덕 중 한 군데인 나카세로(Nakasero)에만 있다. 언덕 위쪽은 정원 도시로 넓고 조용한 길에 인상적으로 담장이 쳐진 대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이 지역에 있는 것은 대사관, 국제 구호 기구, 최고급 호텔, 정부 청사 및 부유층의 저택 등이다. 언덕 아래쪽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게, 작은 사무실, 저렴한 호텔, 싼 음식점, 노점상, 힌두교 사원, 버스 정류장과 택시 주차장 등이 즐비하다. 이 혼잡한 지역의 거리는 사람들,찌그러진 낡은 차, 복권 장수, 고무 도장에서 라디오 수리까지 품목이 다양한 거리의 행상으로 빽빽하다.

캄팔라 거리에서 재미를 찾지 못한다면 수준 높은 관광지도 많다. 우간다 박물관(Uganda Museum)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전통 악기 수집품으로, 연주해 볼 수도 있다. 카수비 고분(Kasubi Tombs)은 1881년 처음 왕궁이 지어졌던 지역인 카수비 언덕(Kasubi Hill)에 있다. 이곳에서는 바간다 부족의 카바카(kabakas, 왕)이 거주하던 벽이 갈대와 나무껍질로 된 거대한 건물을 볼 수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우간다 야생동물국(Uganda Wildlife Authority Office)에서는 교외의 브윈디 국립 공원(Bwindi National Park)에서 고릴라를 구경하는 투어의 예약을 받는다.

브윈디 국립 공원(Bwindi National Park)

브윈디는 우간다에서 가장 최근에 조성된 국립 공원이다. 이전에는 불가해한 숲(Impenetrable Forest)이라 알려졌던 이 공원은 우간다 남서부, 콩고 국경과 아주 가까운 지역에 330 sq km (128 sq mi) 넓이로 자리잡고 있다. 공원 안에는 몇 군데 안 남은 산악 고릴라의 거주지가 있고 이 곳에 세계 전체에 살아남은 산악 고릴라의 절반 가량, 약 320마리가 살고 있다. 르완다와 콩고 동부의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브윈디는 동아프리카에서 고릴라를 구경할 수 있는 중심 지역이 되었다.공원은 아프리카에서 동식물군이 가장 풍부한 지역 중 하나로, 코끼리, 희귀한 거대 숲돼지, 10여종 이상의 영장류가 산다. 공원 본부는 공원의 북쪽 가장자리인 부호마(Buhoma)에 있는데 이 곳에서 고릴라 관광이 시작되고 공원 내에 유일한 숙박시설도 있다.캄팔라와 부호마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부토고타(Butogota) 사이에는 매일 버스가 다닌다. 부토고타는 수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350km (220mi) 떨어져 있다. 부토고타에서 부호마까지는 17km (11mi) 떨어져 있다. 이 사이에는 정해진 교통편이 없으므로 걷거나 픽업트럭이나 오토바이를 렌트해야 한다.

진자(Jinja)

진자는 빅토리아 호숫가에 있으며 오래된 아시아풍의 건물이 가득 들어차 이 마을에 대규모 아시아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던 옛 시절을 연상하게 한다. 이디 아민(Idi Amin)이 아시아인들을 무자비하게 나라 밖으로 몰아내기 전까지, 이 마을은 말 그대로 아시아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때 추방되었던 사람들 중 대다수가 돌아오고 있으며 마을은 다시 번영하기 시작했다. 진자는 마하트마 간디가 자신의 재를 뿌리라고 지정했던 곳 중 하나다. 간디를 추모하는 동상이 마을 근처 힌두교 사원에 세워져 있다.

진자는 우간다 대부분의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수력발전 댐인 오웬 폭포 댐(Owen Falls Dam) 근처에 있다. 캄팔라에서 진자까지의 주요 도로는 댐 꼭대기를 가로지르고, 기차 역시 근처의 다리를 지나간다. 오웬 폭포 댐이 건설되기 전 나일강의 수원은 리폰 폭포(Ripon Falls)로, 나일강은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길에 이 곳에서 빅토리아 호수를 형성한다. 리폰 폭포는 댐이 건설되면서 물이 잠겼지만 지금도 그 흔적은 볼 수 있다.진자는 캄팔라에서 북동쪽으로 60km (37mi) 정도 떨어져 있고 버스나 택시, 기차로 쉽게 갈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세스 군도(Ssese Islands)

세스 군도를 이루는 84개의 섬은 빅토리아 호수 북서쪽 기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섬들은 우간다 내전으로 파괴되지 않고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다. 바세세(Basese)라 불리는 주민들은 독립된 부족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독특한 언어, 문화, 풍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주로 고기를 잡고 커피, 고구마, 카사바, 얌, 바나나를 재배하면서 살고 있다.

주요 섬 중 부갈라(Buggala), 부푸미라(Bufumira), 부카사(Bukasa), 부베케(Bubeke), 코메(Khome) 등에는 언덕이 많아 경작지가 없으며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들어찬 숲이 있다. 여기에서는 원숭이, 하마, 악어, 여러 종류의 새를 볼 수 있다. 야생 동물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세스 군도는 낚시나 수영을 즐기거나 아니면 그냥 태양 아래 딩굴거리기에  좋은 곳이다.

세스 군도는 캄팔라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본토와 페리나 고깃배로 연결된다. 페리는 부카카타(Bukakata, 캄팔라에서 마사카(Masaka)를 거쳐 남서쪽으로 80km/50mi 정도 떨어져 있다)와 부갈라 섬 사이를 오가고 고깃배는 포트 벨(Port Bell, 캄팔라 바로 남동쪽)에서 부갈라 섬사이를 오간다.루웬조리 산맥(Ruwenzori Mountains) & 키발레 삼림 국립 공원(Kibale Forest National Park)

안개로 덮힌 루웬조리 산맥에서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힘들지만 즐거운 트레킹을 경험할 수 있다. 루웬조리 산맥은 100km (62mi) 정도 뻗어 있으며 우간다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 공원에 속한다. 산꼭대기에는 만년설이 덮힌 곳이 많고 빙하로 덮인 곳도 있다. 가장 높은 산은 공원 중심 부분에 있는 스탠리 산(Mt Stanley)이며 높이가 5109m (16,760ft)에 달한다. 여행을 계획하기 전에 캄팔라에 있는 관광 사무소에 들러 확인을 해 보는 것이 좋다. 이 지역 반군인 로드 레지스탕스 아미(Lord's Resistance Army)의 활동 때문에 트레킹이 금지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포트 포탈(Fort Portal)은 초록빛의 기분 좋고 조용한 마을로 루웬조리 산맥 북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으며 차 재배의 중심지이다. 또한 남동쪽으로 30km (19mi) 떨어진 키발레 삼림 국립 공원을 탐사하기 위한 근거지이기도 하다. 키발레 삼림 국립 공원은 침팬지로 유명하며 세계에서 영장류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또한 비비, 콜로부스(colobus) 흰 원숭이와 빨간 원숭이, 관목 영양, 시타퉁가(sitatungas), 영양, 사향고양이, 버팔로, 코끼리 등의 덩치 큰 포유류들도 많이 산다.

포트 포탈은 캄팔라에서 북서쪽으로 270km(168mi) 정도 떨어져 있으며, 버스와 택시로 쉽게 갈 수 있다. 포트 포탈과 키발레 국립공원, 루웬조리 국립 공원 사이를 오가는 셔틀 버스와 택시도 많다. 

알버트 호수(Lake Albert)

알버트 호수는 중동에서 모잠비크까지 이어진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시스템(Great Rift Valley system)에 속하며, 1894년부터 우간다와 콩고 간 국경의 일부가 되었다. 영국 탐험가였던 새뮤얼 베이커 박사(Sir Samuel Baker)가 1864년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이 호수를 발견했고, 당시 대영제국 여왕의 부군이었던 알버트 경의 이름을 따 호수 이름이 지어졌다. 알버트 호수를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늦은 아침으로, 이 때에는 호숫가 주민들이 배를 타고 나가 잡은 생선을 물가에 끌어올린다. 이런 광경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부티아바(Butiaba)로, 캄팔라와 호수 지역을 연결해주는 길가에 있다. 이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볼 수 있는 알베르틴 단애(Albertine Escarpment)도 장관이며, 호수 전체도 볼 수 있고 콩고의 블루 산맥(Blue Mountains)도 멀리 보인다.부티아바는 캄팔라에서 대략 250km (155mi) 떨어져 있다. 호숫가에 있는 부티아바 동쪽의 마신디(Masindi)나 북쪽의 완세코(Wanseko)를 통해 버스와 택시로 갈 수 있다.

레저스포츠

우간다 남서부의 루웬조리 산맥에서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훌륭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어 여행자들에게 킬리만자로나 케냐 산 만큼 인기가 높다. 그러나 올라가기는 확실히 더 어렵다. 5일 정도 트레킹할 각오를 하고 따뜻하고 방수가 되는 옷을 준비하라. 남서쪽의 브윈디 국립 공원, 워터폴 트레일(Waterfall Trail), 무자비지로 루프 트레일(Muzabijiro Loop Trail), 무냐가 리버 트레일(Munyaga River Trail)은 난이도는 다양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루트다. 캄팔라 남쪽 세스 군도 주변의 물은 깨끗하고 시원해 수영하기에 아주 좋다. 나일 강에서 급류타기 래프팅을 하는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래프팅 업자 대부분은 나일 강과 빅토리아 호수가 만나는 지점인 진자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우간다 로 가는 길

캄팔라의 국제 공항은 사실상 남서쪽으로 35km (22mi) 떨어져 있는 엔테베(Entebbe)에 있다. 이 공항은 1976년의 '엔테베 공습(Entebbe Raid)'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인질이 된 이스라엘 비행기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이스라엘 용병들이 예고없이 우간다에 들어왔던 것이다(이 사건은 찰스 브론슨이 등장하는 B급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이디 아민이 납치범들과 공모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많은 택시와 미니버스가 공항과 캄팔라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항공편을 이용해 우간다로 입국하는 여행객은 거의 없는데,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동아프리카로 오는 대부분의 비행편은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Nairobi)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로비에서 버스를 이용해 우간다로 입국한다. 케냐, 르완다, 탄자니아에서 엔테베로 오는 비행편도 있다. 비행기로 우간다를 떠나는 경우 출국세는 US$20이다.

케냐에서 버스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국경 초소 두 군데는 말라바(Malaba)와 부시아(Busia)이다. 탄자니아에서 우간다로 들어오는 루트는 부코바(Bukoba)와 마사카(Masaka) 사이 빅토리아 호수 서편에 튀어나와 있는 카제라(Kagera)이다. 자이레에서 오는 루트는 키소로(Kisoro)에서 부나가나(Bunagana)를 거쳐 루수루(Rutshuru)로 오는 서쪽 루트와 카세세(Kasese)에서 베니(Beni)로 오는 북서쪽 루트가 있다. 그러나 동부 자이레의 상황은 불확실하다. 국경을 넘기 전에 안전 문제를 확인해 보라. 육로를 통해 르완다로 입국하는 것도 역시 위험할 수 있으며 수단으로 입국하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다.캄팔라와 나이로비 사이에는 직행 버스가 매일 다니며 12시간에서 14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이 두 도시 사이를 오가려면 기차가 더 낫다. 케냐 철도(Kenyan Railways)가 기차를 자주 운행하며, 대부분 야간열차이다. 빅토리아 호수에는 우간다의 캄팔라와 탄자니아의 므완자(Mwanza) 사이를 오가는 보트가 있다.

국내 교통편

우간다 항공(Uganda Airlines)에는 국내선 비행기가 없다. 현지인들 대부분은 합승 미니버스(택시라고 부른다)로 여행하며, 미니버스는 항상 있다. 요금은 정해져 있고 사람이 다 차야 출발한다.버스가 매일 주요 도시 사이를 오가며 EMS 우편 미니버스가 일주일에 몇 번씩 캄팔라와 주요 도시 사이를 오간다. EMS 우편 미니버스 쪽이 일반 버스보다 요금도 싸고 더 안전하고 빠르다. 캄팔라에는 자전거 택시가 있다(현지인들은 보다-보다(boda-boda)라고 부르는데, 원래는 국경이나 초소(boda) 사이를 오가는 셔틀로 쓰였기 때문이다).

우간다에는 주요 철도 노선이 둘 있다. 첫 번째 노선은 토로로(Tororo, 우간다의 남동쪽 구석, 케냐와의 국경선에 위치한 도시)에서 출발하여 우간다 전체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가면서 캄팔라를 경유한다. 다른 노선은 토로로에서 출발해 북서 방향으로 우간다를 가로지른다.우간다 남부의 주요 도시 사이 도로망은 아주 잘 정비되어 있지만 가끔 사륜구동 차량이 필요할 때가 있다. 렌트카 회사들은 엔테베 공항 근처나 캄팔라를 비롯한 다른 대도시에 많다. 우간다에서 운전을 하려면 국제 운전 면허증이 필요하며 왼쪽으로 운전해야 한다. 도로 표지판이 존재하지 않으며 휘발유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