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North Korea)

론리플래닛 웹에서 가감없이 번역한 것입니다. 남한에서 북한을 보는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서양인들이 북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 가지 목적에서 북한 부분의 자료를 번역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현재의 북한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를 자성해 보는 의미에서이며, 두 번째는 한반도밖에 사는 서양인들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객관적으로 우리의 동포들이 사는 땅에 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편집자)

북한은 조지 오웰의 '1984년'과 냉전 시대의 희극 오페라가 환상적으로 섞인 것 같은 나라이다. 강성 당원만이 살도록 허락되며 노인과 임산부는 배제되는, 극단적으로 깨끗한 상품 진열장 같은 수도 평양에서부터 아직도 역사를 다시 고쳐 쓰고 있는 중국 접경의 백두산까지 북한의 기괴함은 여행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보고 싶은 것이 위대한 지도자의 청동 흉상, 또는 노동당 창당이나 조국 해방 전쟁, 혁명 등을 칭송하는 거대한 기념비 같은 것들이라면 북한에는 충분히, 아니 질릴 정도로 많이 있다. 북한을 방문하면 추운 냉전의 장벽으로 되돌아간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몇몇 훌륭한 국립 공원이 있지만 나라 전체가 상업화된 관광지로 거의 개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매력거리들 중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세계에 대한 격렬한 저항처럼 간간히 울리지만 총성이 들려오고, 예전의 다른 강성 공산주의 국가들도 거의 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계속해서 고립을 유지하고 있다. 몇 년 동안 흉년이 이어지면서 장기간에 걸친 식량 부족을 유발시켰고 그 어느 때보다도 예측하기 힘든 지도부의 정책은 핵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만약 들어갈 수만 있다면 북한은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될 것이다.

북한지도(13K)

통계 자료

국명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면적 : 120,410 sq km
인구 : 2100만 명
수도 : 평양
민족 : 한국인언어 : 한국어
종교 : 1950년대 이후 종교는 사실상 금지되어 있음
정체 : 1당 독재에 의한 공산주의 세습체제
국가 원수 : 김정일

지리 및 기후

북한은 당연히 남한과 남쪽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북쪽 바로 코앞에는 중국이, 그리고 북동쪽 끝에는 러시아가 있다. 면적은 영국보다 조금 작으며 남한보다 몇천 평방 킬로미터 크다. 남쪽과 동쪽은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에 면해 있다. 남한의 70%가 주거지역으로 부적합한 산지임에 비해 북한은 산지가 80%나 된다.  식민지 시대 당시 일본은 전혀 환경보호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한반도 전체를 마치 사유 제재소나 광산처럼 이용했으며 제 2차 대전이 시작되자 더욱 천연 자원을 착취했다. 그러나 북한의 다가가기 힘든 험한 자연 환경의 덕택으로 상당부분 보존이 가능했고 북쪽과 동쪽 지역은 대부분 울퉁불퉁하고 울창한 산지로 농업이나 개발을 위해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곳들이다. 1950년대 한국 전쟁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거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지하에 건드려지지 않은 채 잠자고 있는 광대한 광물 자원과 함께 아직도 북한의 대부분은 울창한 삼림으로 덮여 있다. 강어귀나 늪지대는 철새들과 다른 야생 동물들로 풍부하며 인적인 드문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흑곰이나 사슴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기후는 남한과 거의 비슷하지만 겨울에 조금 더 춥고 건조하다. 대부분의 강우량은 7월에서 9월까지 집중되지만 가을은 바삭바삭할 정도로 건조하며 맑은 날들과 시원한 밤들로 이어진다. 겨울은 길고 추우며 스키 리조트 같은 것들도 전혀 없기 때문에 이때 여행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여름은 일반적으로 덥고 많은 비로 끈적끈적하다.

역사

한국인들의 역사에 따르면 최초의 왕은 BC 2333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별로 미학적인 감각이 없는 학자들에 따르면 한반도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중앙 아시아와 북아시아에서 한반도로 여러 부족들이 이주해온 BC 30,000 경으로 추산되고 있다. 계속되는 중국의 압력 하에서 이들 부족은 서로 단결하여 AD 1세기 경에는 몇몇 왕국을 세웠다. 7세기에 이르러 신라가 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하여 국토의 여기저기에 왕궁이나 탑, 정원 등을 지었으며 일본 문화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13세기 초에 몽고 군이 침입하여 국토를 초토화시켰다. 몽고 제국이 무너지면서 조선 왕조가 이어졌으며 이후 한글이 발명되었다.  

1592년에는 일본이 침입하였으며 다시 중국의 침략으로 이어졌다.  조선은 싸움에서 완패하였으며 중국의 후금이 침략해 들어왔다. 조선은 음흉하고 거친 세상을 등지고 바깥의 영향을 배제한 채한일 합병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시작될 때인 20세기 초반까지 쇄국 상태를 유지했다. 일본은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반도를 잔인하게 지배했으며 반일 감정은 아직도 남북한에 강하게 남아있다. 항일 독립 운동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계속 벌어졌으며 북쪽 사람들은 아직도 일본에 대항해 힘들고 어려운 투쟁을 벌였다는데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한반도 남쪽을, 구소련이 북쪽을 점령하였다. 스탈린은 소련군 특수 훈련 부대의 한국인 장교인 김일성(위대한 지도자)을 통해 북쪽을 공산화시키려 하였고, UN의 한반도 전역에 걸친 선거 계획을 거부한 채 김일성은 꾸준히 정치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 북한 정부의 최고 지위에 이르게 되었다. 선거는 남한에서만 치러지게 되었으며 남한이 독립 정부를 선포하면서 북한의 침입이 뒤따랐다. 한국 전쟁은 1953년에 전투를 마쳤지만 정전협정이 성립되지 않은 것이나 가끔 벌어지는 충돌까지 고려한다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2백만 명이 죽었으며 북한은 실제로 땅이 평평해질 정도로 계속해서 미군의 폭격을 받았다  이러한 폭격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이나 독일에 쏟아진 것보다 더 심한 것이었다. 한반도는 공식적으로 38도선과 비슷한 경계로 나뉘어졌으며 김일성은 북한을 구소련 스타일의 통치 체제로 이끌어 구소련 스타일의 숙청이나 노동 수용소, 그리고 심지어 우상화 작업마저도 이어받았다. 한편 북한의 경제는 전쟁 이후 초기에는 남한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되었는데 이는 김일성이 주창하고 실시한 주체 사상의 영향 때문이었다. 북한은 일본이 남기고 간 중공업 시설을 토대로경제를 발전시켰으며, 사회 부문에서도 큰 비약을 보여 북한 주민은 처음으로 학교, 병원, 식량 비축, 노동권, 휴양 시설 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노동 계급의 적으로 간주되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이 크게 향상되었다.남북한의 관계는 50여 년간 얼음 같은 상태가 이어져왔다. 협상은 대체적으로 미사여구에 그쳤으며 수년간 양쪽의 분노는 끓어오를 정도로 고조되곤 했다. 공산주의 세계의 해체는 북한의 고립을 가중시켰으며 옛날의 동지인 러시아나 중국은 좀더 부유한 남한과의 국교를 수립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국제 원자력 에너지 기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북한측은 계속해서 국제 감시단의 입국을 거부했다

1994년 김일성은 북한의 핵 계획을 동결하고 남한의 김영삼 정부와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겠다고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정상회담은 김일성이 7월 8일 사망함으로써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의 아들인 김정일(친애하는 지도자)이 권력을 물려받아 더욱 불확실한 새로운 시대로 북한을 이끌고 있다.김정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확실히 내향적인 듯이 보이며 많은 시간을 외국 영화를 보면서 지내고 있는 듯하다. 김일성 사후 그는 최근까지 다른 나라를 방문하거나 외국 원수와 만난 적이 거의 없다. 김정일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장애가생겼다는 구설수가 있는 가운데 경제는 평균 5%씩 계속 후퇴하고 있고 식량과 에너지 부족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며 일관된 지도력이 결여된 상태이다. 몇 년에 걸친 흉작은 상당한 식량부족을 몰고 왔으며 탈북자의 수도 급증하고 있다. 2000년 6월 13일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상회담을 가졌다.

경제

국내총생산: US$218억
1인당  GDP: US$900
연 성장률 : -0.03%
주요 산업 : 군사 제품, 기계, 전기 동력, 화학, 광업, 야금, 직물, 식품 가공업
주요 교역국 : 중국, 일본, 한국, 독일, 홍콩, 러시아

문화

비록 의도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김일성은 전통적인 한국 예술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그는 열렬한 민족주의자로 한국 문화에 대한 우수성을 확신하고 있었으며, 북한 주민들은 스스로가 민족적으로 우수하고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이며 김일성은 최고의 지도자라고 배워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즉, 한국의 전통적인 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북한이야말로 그것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행자들은 전통적인 또는 현대적인 도기나, 조각, 회화 그리고 건축물 등을 요청에 의해 볼 수 있으며 가이드는 적당한 가격에 영화나 연극을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전통 음악은 일본이나 중국과 비슷하며 현악기에 특히 중점을 두고 있다.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장중한 종악이며 다른 하나는 좀더 서민적인 민속악이다. 전통춤은 북춤(승무-활기차고 열띤 춤으로 목 주위에 북을 걸고 춘다), 가면춤(탈춤), 그리고 1인 무용(살풀이-주로즉흥적인 안무로 이루어진다) 등이 있다. 한국은 또한 시각 예술에도 강하다. 전통적인 회화는 중국 서도의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붓끝의 선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대부분의 전통 조각은 불교에 관계된 것들이다.

한국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삼국유사로 12세기 승려 일연에 의해 쓰여졌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언어를 예술적인 형태로 간주하며 특히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비록 북한의 언어도 남한과 동일하지만 미국과 일본보다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북한 쪽은 남한과 다소 다른 억양과 어휘가 발전했기 때문에 일반 주민이 서로 일상회화를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전통적인 한국사회는 BC 500년경에 중국에서 발전된 윤리 체계인 유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교는 부모, 가족, 친구들 그리고 권위있는 위치의 사람들에 대한 헌신과 존경에 큰 역점을 두고 있다.공자는 또한 정의, 평화, 교육, 개혁과 인도주의 등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 내에서는 모든 전통적인 종교가 정치적인 개혁, 사회 해방, 경제 발전, 독립 등을 반대하는 구시대적인 봉건주의 사고 방식의 표현으로 간주되고 있다. 몇몇 중요한 절들과 제단은 아직도 존재하며 대부분 시골이나 산 속에 있다. 이곳들은 대부분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역할이나 박물관으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한다. 상품 진열장에 불과한 교회도 역시 북한 주민이 종교적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위해 과거에 외국인 관광객에게 전시되던 것으로 단지 형식적인 상품 진열장 그 자체일 뿐이다.

심각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외화를 가지고 들어간 여행자들은 잘 먹을 수 있다. 가이드가 음식을 주문해 주는데 만약 특별한 요청, 예를 들어 채식 음식을 원한다든지 하는 것이 있으면 사전에 알려둘 필요가 있다. 육류나 생선, 닭고기 등은 일반적이며 서양 여행자들은 양식을 원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현지 음식을 먹고 싶은 서양인들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인삼주가 가장 독한 술이며 맥주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축제 및 행사

북한은 크리스마스나 음력설 또는 남한의 주요 명절을 같이 새지 않는다. 노동절과 해방 기념일이 가장 큰 행사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펼치는 거대하고 화려한 가두 행진이 펼쳐지는데, 이는 북한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구경거리로 꼽힌다. 어쨌든 이 행사들을 보려면 평양에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여행자 정보

비자 : 비자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은 북경 북한대사관 내에 있는 관광 사무소에 접촉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북한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을 확률은 훨씬 낮다. 만약 비자를 받을 수만 있다면 절차는 신속하게 진행된다.
보건 위생 : 특별한 위험은 없지만 양약이 드물기 때문에 아프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 한약이 보다 널리 퍼져 있으며 중국과 비슷하다.
시간대 : 한국과 동일하다.
전압 : 110/220V, 60 Hz
도량형 : 미터법(도량형 환산표 참조)

경비 및 환전

통화 : 북한 원(W)

여행의 경우는 상당히 많은 돈을 들여야 할 것이다. 북한으로 오가는 교통 수단에 대한 요금을

제외하고, 대규모 그룹의 경우 하루에 US$100, 혼자 다닐 경우 US$250 사이를 지출해야 한다. 외국인은 호텔에서 환전해야 한다. 비자를 받을 때 보통 외화 신고서를 받게 되며 출국 전에 한 장을 더 써내야 한다. 쉽게 바꿀 수 있는 외화는 독일 마르크, 프랑스 프랑, 영국 파운드, 미국 달러, 일본 엔 뿐이다.

비록 중국 접경에 있는 도시의 암시장에서 더 나은 환율로 북한 원을 바꿀 수도 있지만 이런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 이런 식으로 바꾼 돈은 곧 몰수되며 강제 출국이나 심한 경우 체포될 수 있다.

여행 시기

북한을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5,6월과 9,10월이다. 5,6월은 추운 겨울이 물러나고 따뜻해지기 시작하며 9,10월에는 단풍이 선명하게 물드는 시기이다.

주요 여행지

평양

평양은 도시의 발전과 시민의 훈련, 복지 등에 대한 이미지가 정권의 결단에 의해 계획되는 가장 좋은 예이다. 거리의 행상인이나 뒤에 텔레비전을 싣고 다니는 자전거로 북적거리는 아시아의 다른 수도의 모습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전거조차 기대할 만한 것이 못된다. 이곳에 살도록 허락되어지는 사람들은 오직 적절한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고, 변하지 않는 충성 기록이 증명된 사람들뿐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장애자, 노인, 동물, 노점상 그리고 심지어 임산부마저 볼 수 없게 되었다. 평양은 대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강에서 가장 놀라운 볼거리는 강 가운데 있는 두 곳의 분수로 150m까지 솟아오르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이라고 한다. 여행 첫날은 반드시 자동차로 시내 관광을 안내 받는다. 주요 기념물 중 하나인 주체사상탑은 179m 높이의 첨탑으로 대동강 제방의 동쪽에 있다. 또 개선문을 보도록 안내되는데 이곳은 일본이 물러나고 김일성이 대중에 호소하는 연설을 한 곳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안내원은 이 개선문이 파리의 개선문보다 전체적으로 3m 더 높다는 것을 강조한다.

김일성 경기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장 중 한곳이며 천리마 상은 북한의 빠른 재건의 진전을 나타내기 위해 세운 것으로 둘 다 한 번쯤 들러 볼만하다. 김일성과 혁명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나 기념비는 상당히 많지만 보다 전통적인 구경거리, 예를 들어 칠성문이나 대동문 같은 오래된 도시 성문들이 더 볼만하다. 북한의 서커스는 인민군에 의해 운영되며 커다란 원형 건물 안에서 펼쳐진다.또 기회가 있다면  절대적으로 가보아야 할 곳 중 하나가 지하철역으로 안에 지어진 엄청나게 화려한 장식은 그저 멍하니 보게 될 뿐이다. 청동상, 벽화, 모자이크, 그리고 샹들리에 등으로 장식되어있으며 기둥과 계단, 복도와 플랫폼은 모두 대리석이다.

숙소를 어디로 정하든지 지불한 투어요금에 포함되어 있지만 대체로 숙소는 비싸다. 여행자는 45층 높이에 최고층의 회전 레스토랑을 갖춘 최고급 평양 고려 호텔에 묵도록 거의 압력을 받는다. 객실은 500실이며 여행객들이 적기 때문에 예약에는 거의 어려움이 없다. 다른 고급 호텔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편리한 위치에 있지 않다  고려 호텔은 기차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다. 가장 인기 있는 C 급 호텔은 창광산 호텔로 역에서 2km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호텔에서 식사를 하게 되지만 가이드를 통해 다른 곳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도 있다.

해주

해주는 평양에서 남쪽으로 130km 떨어진 항구 도시이다. 여행자들은 앞바다에 있는 수많은 작은 섬들로 보트를 타고 가거나 파도가 밀려 나간 모래사장을 돌아다녀 볼 수 있다. 수양산(945m)은 8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김일성을 찬양하는 동상, 슬로건 등이 주요볼거리이다.

구월산

무미 건조한 항구 도시 남포로부터 대동강 어귀 바로 건너에 서해에서 가장 경치 좋은 구월산이 있다. 몇몇 도로나 비포장 등산로를 통해 두 곳의 산정상과 두 곳의 주요 계곡, 폭포들, 온천, 낡은 성벽, 그리고 예전 절이나 암자들에 오를 수 있다. 주봉의 남쪽에는 북한에서 여름 휴양지로 인기 있는 삼성 휴양지가 있다. 아름다운 경치를 따라 더 남쪽으로 가면 월정사가 나타난다. 월정사는 재건축 된 절이지만 불행히도 옛 영광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들 주요 구경거리들은 드라이브나 등산을 통해 당일로 다녀올 수 있다. 구월산은 평양에서 남서쪽 75km 정도에 있다.

개성

현재 개성에는 대략 200,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800년 전 고려의 수도일 당시 이곳에는 이의네 배에 이르는 인구가 살았다. 당시에는 불교 귀족으로 넘치는 화려한 부를 지닌 복잡한 대도시였다. 몇 세기에 걸친 무관심과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버린 세 번의 커다란 전쟁으로 개성은 옛날의 화려함이 다소 흐려졌지만 아직도 예전의 유적들과 몇몇 훌륭한 박물관들이 남아 있다. 성균관은 992년에 세워졌으며 1592년 임진왜란 이후 다시 재건된 유교 대학이다. 이 안에 자리잡은 고려박물관에는 도기나 다른 불교 유물 등이 소장되어 있고 때로 유교 의례가 재현되기도 한다. 개성은 넓다란 도로를 갖춘 현대식 도시이지만 기왓장을 얹은 전통적인 집들이 강과 커다란 도로 사이에 끼어있는 옛날 지역을 벗어나면 그리 흥미로운 곳들은 없다. 개성에는 1216년 지어진 선죽교와 유학자 정몽주를 기념하는 칭송비가 있다. 개성을 벗어나면 바로 고려 31대 왕으로 1352년에서 1374년까지 재위한 공민왕과 왕비의 능이 있다. 능은 전통적인 화강암 정면과 여러 석상으로 풍부하게 장식되어 있다. 개성은 남한과의 접경에 가까이 있으며 평양에서는 남쪽으로 125km 정도 떨어져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백두산

백두산은 최북단의 북한과 중국 국경에 걸쳐 위치해 있다. 2744m의 눈에 띄는 화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주위에는 광대한 야생지역이 펼쳐져 있으며 주봉은 하얀 부석과 눈으로 연중 내내 덮여있다. 산의 이름은 하얀 머리를 한 산이라는 뜻이다. 정상에 자리잡은 거대한 분화구 호수는 천지이며, 나무가 없이 험한 바위들로 둘러싸여 있다. 천지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산정호수 중 하나이며 비록 두 곳의 온천이 스며들어 오지만 가장 차가운 호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백두산은 모든 한국인에게 신성시되는데 이는 한국 전설에서 '천상신의 아들'인 단군이 지상에 내려와 처음으로 한민족의 왕국을 건설한 곳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재 역사책도 김일성이 이곳에 1920년대 항일 본부를 설치하여 일본군을 물리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역사책에는 이곳이 2차대전 중 전투지였다고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혁명과 반제국주의 슬로건들이 나무에 새겨져 있다. 이렇게 슬로건이 새겨진 나무들은 매년 더욱더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제 새겨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도록 만든다. 백두산은 평양에서 북동쪽으로 350km 떨어져 있다.

레저스포츠

북한에서 특별한 흥미를 만족시킬만한 몇몇 활동들로는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등을 오르는 등산과 태권도, 진흙 미용, 한국어 강좌, 교육 시설, 춤, 골프, 사냥, 백두산으로 떠나는 생태학적 또는 지질학적 조사 여행 등을 들 수 있다. 또 침술, 뜸, 진공 플라스크를 이용한 지압, 손으로 하는 치료나 물리 요법 등을 경험하는 전통 한방 의학 투어를 해 볼 수도 있다. 투어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못한다면 북한 정부가 지정한 가이드와 함께 등산을 할 수 있다.

북한으로 가는 길

북경에서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는 두 시간 걸리며 차이나 노던(China Northern)과 북한의 고려 항공(Koryo Air)이 주 3회 정도 두 도시를 연결한다. 비록 거의 빈 채로 비행기가 운행되기는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예약해 두는 것이 좋다. 순안 국제 공항은 평양에서 30km 서쪽이며 자동차로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다른 대안으로는 북경에서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또 북동쪽 끝을 통해 북한에서 러시아로 들어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갈 수 있다.

국내 교통편

북한 내에는 정기 국내편 비행기가 없으며 국토 전역이나 주요 도시를 잇는 공공 버스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 주민은 허가 없이 나라 안을 여행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여행자들은 대부분 운전사와 안내원에 동승하여 자동차를 타고 여행한다. 개성과 같은 주요 관광 도시의 경우에는 기차를 통해 도착할 수 있다. 북한에는 자전거가 거의 없는데 이는 중국과 극단적인 비교가 되며, 여행자가 자신의 자전거를 가지고 간다고 해도 거리 표지판이나 신호등이 전혀 없으므로 자전거 여행은 무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