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ALBANIA)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해 있는 작지만 따뜻한 나라 알바니아는 오랫동안 가난과 전쟁, 문맹, 수 차례에 걸쳐 실패한 5개년 계획들로 인해 고통받아 오고 있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수 년 동안 떠돌아다니고 있는 난민들도 있지만 알바니아는 지중해의 전통적인 매력과 소련식 효율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수니파 이슬람교부터 알바니아 정교는 물론, 전원풍의 해안 리조트 및 바위산 봉우리부터 잘 경작된 들판에 이르기까지 종교, 문화, 환경들이 어지러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나라가 바로 알바니아이다. 동유럽 국가 중 독재정권의 잔재로 가장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던 이 곳에는 감귤 과수원, 올리브 농장, 포도밭 등이 도처에 있다. 중국인들이 세운 허름한 공장들은 위풍당당한 이슬람 사원 옆에 자리잡고 있고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진 알바니아 정교회는 '냉혹한 소련'의 문화 궁전들과 마주보고 있다.

수 천년 동안 발칸 반도의 열강들에게 시달리다가 1960년대에는 모택동 문화 혁명과 함께 일대 변혁을 치루기도 했다. 알바니아는 얼마 전에야 민주주의를 향힌 첫 걸음을 떼었으며 외국과의 관계 개선 및 외국 여행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웃해 있는 코소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청소에 대한 비분 강개는 어느 나라 못지 않지만 평화를 바라는 바램 또한 그에 못지 않다. 이런 중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점이라면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산과 따뜻한 지중해의 햇살 그리고 마음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아드리아 해의 파란 바다일 것이다.      

알바니아지도 (15K)


통계 자료

국명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c of Albania)

면적 : 27,748 sq km

인구 : 3백 3십만 명

수도 : 티라나(Tirana <인구: 40만 명>)

인종 : 알바니아인(96%), 그리스인(2.54%), 마케도니아인(1.5%), 집시 약간

종교 : 이슬람교(70%), 알바니아 정교(20%), 로마 카톨릭(10%)

정체 : 공화제

대통령: 렉스헵 메이다니(Rexhep Meidani)
 

지리 및 기후

벨기에보다 조금 작은(우리 나라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크기) 나라, 알바니아는 아드리아해 동서쪽에 있고 바다 건너로는 이탈리아가 있다. 남쪽으로는 그리스(Greece),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Macedonia), 북쪽으로는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및 혼란 상태인 코소보(Kosovo)와 인접해 있다. 동유럽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올리브와 감귤, 포도넝쿨이 우거진 지중해 기후를 만끽할 수 있는 나라이다.  거대한 호수들, 그 중에서도 세계 최대 깊이 294m를 자랑하는 발칸호(오리드호<Lake Ohred>)는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마케도니아(Macedonia), 그리스(Greece)에 두루 걸쳐있다. 이오니아(Ionia) 연안으로, 특히 블로라(Volora)에서 사란다(Saranda)까지 이어지는  '꽃의 리비에라(Riviera of Flowers)'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알바니아에는 국립 산림지 6곳, 자연 보호구역 24곳, 천연 기념물 2000여 점이 있지만 보호라는 건 서류 상 얘기일 뿐이다. 거의 모든 공원은 사냥 및 벌채를 일삼는 인간들로 인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으며 공원 관리도 소홀한 편이다. 1994년 사냥이 그나마 법으로 금지되자 디브자크 국립공원(Divjake National Park)에 있는 석호 카라바스타호(Karavasta Lagoon) 같은 보호구역 환경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환경 오염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수구는 거의 정화되지 않은 채로 강물로 흘러 들어가고, 공장에서 쏟아내는 폐수나 화학물질도 마찬가지다. 알바니아의 여름은 무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시원하고 습윤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닷바람으로 해안을 따라 여름내 온화한 기후를 보이기도 한다. 겨울동안 년 중 강수량의 40% 정도가 내리고, 고산 지대를 중심으로는 거대한 대륙성 공기의 영향을 받아 매우 춥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겨울은 그다지 추운 편이 아니라, 대부분 건물에서 난방을 하지 않아 수도꼭지가 얼어붙는 경우도 간혹 있다.      

 

역사

오늘날 알바니아인의 조상인 일리리아인(Illyrian)은 BC 2000년 경 발칸 반도 서쪽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위로는 호전적 성향이 짙은 나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BC 7세기경 그리스인들이 들어와 자치 식민지를 건설했고, BC 4 세기경에는 고유 부족 국가를 이룬 일리리아인과 평화적인 무역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다가 그리스는 알바니아 남부를 점령했는데 그리스는 오늘날까지 이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하고 있다.

강성 로마 제국은 쉬코드라(Shkodra; 현재 알바니아 북부)를 중심으로 발전해 가던 일리리아 왕국을 넘보기 시작했고, BC 228 년에는 급기야 군함 200척을 앞세워 침략해왔다. BC 167 년 발칸 전역이 급기야는 로마의 지배하여 들어가게 되었는데, 농지에서 일하던 노예 이외의 일리리아 인들은 그나마 평화와 번성을 누릴 수 있었다.  AD 5세기- 6 세기 사이, 로마가 쇠퇴기에 이르자, 이번에는 고트족, 훈족, 슬라브족의 침략이 잇따랐다. 11세기 동로마, 불가리아, 노르만족은 일리리아 북부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서로 다투기도 했는데, 로마가 이 곳을 정복하기 이 전 일리리아는 한 때 다뉴브강 북부에까지 그 세력을 떨쳤다.     세르비아(Serbia), 오스만 터키 왕조(Ottoman Empire), 베네치아(Venetians) 등도 알바니아를 거쳐갔는데, 오스만 왕조(터키)가 1479년 마침내 이 곳을 손에 넣었고, 그 이후 1912년까지 터키의 지배하에 들게 된다. 외세의 침략을 겪으면서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몰락하게 된다.   프리센(Prizen; 현재의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의 알바니아 연맹은 1878년 창설됐고, 자치권을 얻기 위한 분투를 오늘날까지 계속하고 있다. 1881년 터키 군대는 독립에 대한 이러한 작은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으며, 1910년-1912년 독립을 선언하고, 즈마일 케말리(Ismail Qemali)가 이끄는 지방정부가 들어서자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1913년 런던에서 개최된 '6개국 대사 회담'을 통해 알바니아 면적의 거의 절 반 가까운 코소보를 세르비아에게 넘겨주며 대망의 독립국으로 승인되어 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세계 제 1차 대전 발발로 그리스, 세르비아.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의 열강들에게 차례로 침략을 겪으면서 독립운동은 잠시나마 휴지기를 갖게 된다. 그러다가 1920년- 1939년 알바니아는 자체 정부를 수립해 아메드 조그(Ahmet Zogu)가 대통령이 되었고, 그러면서 무솔리니가 이끌고 있던 이탈리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그런 상황은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이탈리아의 침입을 겪으면서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엔버 호자(Enver Hoxha)가 이끌던 공산당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저항운동을 전개하였고, 1943년 이후에는 독일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주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44년 10월무렵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동유럽에서는 유일하게 독일군을 격퇴시키기도 한다. 전쟁이후 공산당들이 권력을 장악했고, 1946년에는 알바니아 공화국이 탄생되었다. 2년 뒤에는 유고슬라비아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과의 연합을 꾀했다. 공산당의 입지를 막으려는 시도가 영국과 미국에 의해 일기도 했지만 공산체제를 전복시키지는 못했다. 1960년에는 후르시초프(Khruschchev)가 알바니아에 잠수함 전진기지를 둘 것을 요구하자 소련과의 관계마저도 단절하고 말았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자 알바니아는 바르샤바 조약에서도 탈퇴했다.

알바니아의 자체 방어 정책으로 전국 곳곳에는 75만 개가 넘는 이글루 모양의 벙커와 토치카가 있는데 그 중에는 밝은 색상으로 채색된 것도 있다. 1960년 소련과 국교를 단절한 이후 알바니아는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나갔고 1966년-1965년에는 문화 혁명에도 동참을 하게된다. 그러다가 1978년 이 관계도 종식되고 만다. 1985년 호자(Hoxha)가 사망하자 그 후임인 라미즈 알리아(Ramiz Alia)는 민주화 및 세계 각 나라와의 외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 1990년 동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공산체제가 무너지자 알바니아에서도 동일한 기대가 팽배해 지면서, 12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정부는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1991년 총선에서 공산당이 승리했지만 5월 총파업이 거세지면서 사회당은 야당인 민주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1991년, 중앙에서의 경제 계획은 실패했고, 공장 가동이 중지됐으며 식량 배급도 끊긴 채 였다. 1991년 말엽까지 알바니아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고 급기야 12월에는 식량 폭동까지 야기됐다. 대량 난민 사태 위기에 봉착하자 EU는 경제 원조를 시작했고, 이탈리아군은 식량 배급선 감독을 위해 두르레스(Durres) 남부에 군 기지를 건설했다. 1992년 선거를 통해 47년 동안의 공산체제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됐고, 민주당은 즉각적으로 과거 공산당원들 및 관리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작업에 들어갔다. 1933년 국제인권 단체는 점점 악화되어 가는 인권 문제에 발동을 걸기도 했다. 알바니아는 1992년 터키와 군사협약을 맺고 북부 알바니아 지역(그리스는 이 지역을 '북부 에피로스'라고 부른다)에 대한 그리스의 영토 주장에 맞서기 위해 이슬람 단체에 가담했다. 겨우 싹트기 시작한 민주주의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난항을 겪으면서 1990년 중반부터 말까지 수상과 대통령들이 수시로 바뀌었다. 국민들은 자국을 벗어나 난민으로 떠도는 신세로 전락했고 이 중 몇몇은 이탈리아 해변으로 몰리면서 알바니아의 정치 상황은 날로 악화되기에 이른다. 후임 지도자들은 코소보에서 행해지는 알바니아인에 대한 탄압을 게속 지탄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20세기 이후 유럽의 탄약고 같은 존재가 되었다.       

 

경제

인플레이션 : 17.4%

주요 산업 : 시멘트, 화학약품, 식료품 가공, 수력, 광산업, 석유, 섬유, 의류, 목재

주요 무역국: 그리스, 이탈리아. 마케도니아. 미국 

 

문화

다성부 음악(Polyphony)은 고래 일리리안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음악으로 여러 사람 또는 악기가 함께 참여해 어우러지는 음악이다. 가사는 주로 서사시, 역사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느리면서도 음울한 음조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하모니와 요들로 이루어져 있다. 알바니아 영화는 거의 드문 편이나 근래 들어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라면 공산사회 이후의 알바니아의 적나라한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는 '라메리카(Lamerica)'를 들 수 있다.

1909년 알바니아어가 표준화되기 전까지 알바니아의 문학계는 그야말로 척박한 상황이었다. 1965년 사망한 팬 놀리(Fan Noli)는 20세기 알바니아 문학계의 거목이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종교적 주제에 기초를 둔 것이었는데, 이외에도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입센, 오마 Khayy?m 등의 작품을 번역 소개함으로써 위대한 문학 평론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도 했다. 현대 알바니아 문학계의 거두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작가로 이즈마일 카데르(Ismail Kadare)을 들 수 있는데 그는 1990년 정치적 망명길에 오른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40개어로 번역, 소개되고 있다.

알바니아어(Shquipja)는 라틴, 슬라브어, 그리스어 등의 특성을 가지는 인도 유럽어에 속한다. 알바니아어에는 2개의 주요 방언이 있는데 토스크(Tosk)와 게그(Gheg)가 그 것으로 이 둘은 1천년 전에 서로 갈라져 나왔다. 1972년 철자법 회의에서 마침내 통합 문어체가 만들어져 두 개의 방언에 대해 현재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탈리아어는 알바니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1943년 전까지만 해도 알바니아인 대부분이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요즈음은 이탈리아 방송을 통해서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적으로 알바니아 종교는 수니파 이슬람교가 70%, 로마 카톨릭이 10%(대부분 북부), 알바니아 정교가 20%를 차지하는데 유럽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교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1967년-1990년 알바니아는 공식적으로 세계 유일의 무신론 국가였는데 이 때문에 수많은 교회, 극장들이 영화관으로 바뀌기도 했다. 공산체제가 무너지자 미국 선교사들이 가담하면서 종교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교회와 이슬람 사원을 찾아볼 수 있다.  

알바니아 음식은 터키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구운 고기인 쉬쉬케밥(shish qebap), 롬스테이크(다진 고기를 동글 납작하게 만든 요리), 쿄프테(미트볼) 등이 주식이다. 지방색 짙은 요리로 유명한 것은 촘렉(고기와 양파 스튜), rosto me salc? kosi(크림을 얻은 로스트 비트), 타베 코시(tave kosi:요구르트를 얻은 양고기) 등이 있다. 수도 티라나(Tirana)에서는 저녁 식사에 점점 더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지만 알바니아는 여전히 점심을 정찬으로 삼는다. 사람들은 아이스크림(akullore)을 즐겨먹으며 커피는 kafe turke 또는 kafe ekspres(에스프레소)라고 하여 매우 진하게 마신다. 적포도주보다는 백포도주가 품질이 더 뛰어난 편이며, 지역 고유의 술로는 아키(aki:브랜디), 콘작(konjak: 코냑), 우조(uzo; 아니시 열매 풍미를 내는 술)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과실주들도 있다.

 

축제 및 행사

공식 휴일로는 1월 1일, 부활절 월요일(3월/4월), 독립기념일(11월 28일), 크리스마스, 라마단 및 바즈라 축제(이슬람 축제일) 등이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EU 국가,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캐나다 등의 나라는 비자가 필요 없다. 알바니아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 받으려면 알바니아 현지 발급 요금을 적용받게 된다.

건강 문제: 설사;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립 병원은 그리 썩 훌륭한 편이 못된다.

시간: GMT/UTC (한 시간 이름)

전기: 220 v, 50 Hz

단위 & 치수: 미터법

경비 및 환전

통화 : 렉(Lek?) 

저렴한 식사: US$5-10

중급 레스토랑 음식 :US$10-20

고급 레스토랑 음식: US$20 이상 

저렴한 숙박지: US$5-10

중급 호텔: US$40-60

고급 호텔: US$150 이상  

수도 티라나의 물가는 알바니아의 다른 지역보다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러므로 여행자들은 이 곳을 되도록 일찍 돌아보고,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예산 경비를 빡빡하게 세워놓았을 경우, 시골에서는 하루 US$30-40 정도면 지낼 수 있지만, 수도 티라나에서는 기본 시설만 갖춰진 곳에서 숙박하고, 가장 간단한 걸로 끼니를 해결한다 해도 US$60-70가 넘게 소요된다. 그나마 호텔에서 지내고 가이드 투어를 한다면 경비는 금방 US$80-90을 훌쩍 넘을 것이다.    

서양 여행자들에게 알바니아가 저렴한 곳이라고 할 지라도, 여러 관광지를 돌아보고, 최고급 호텔에서 묵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면 하루 US$100는 족히 들것이다.  환전소는 마을 어디에나 있는데 특히 우체국이나 국립 은행 앞 거리에 집중해 있다. 은행에서와는 달리 거리에서는 1% 수수료를 떼지 않고 환전해 주는 환전상들이 있으니 찾아보도록 한다(미국 여행자 수표에 한해 은행에서도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환전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혼전하고 난 다음 금액을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미 달러를 가장 선호하지만 물건 살 때 필요한 소액환 정도는 지니고 다녀야 한다. 현금만 통하고 크레디트 카드는 유통이 안되고 있다.

알바니아는 팁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레스토랑의 경우 대략 10%의 팁을 주어야 한다. 신세진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면세점에서 산 술이 최고 선물로 꼽히지만 선물을 전할 때는 상황을 잘 판단해서 신중하게 줘야한다. 길거리에서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들을 나누어주어 괜히 성가신 일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 시장이나 특매장에는 호텔 방부터 택시 여행, 골동품까지 없는 것이 없다.  

 여행 시기

1년 중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따뜻하고 해가 길며, 과일과 야채가 풍성한 9월이다. 5월부터 9월까지는 일조량이 가장 많은 때고 7월은 가장 무덥다. 반면 4월과 10월은 쾌적하다.  

주의 사항

1999년 3월 말 NATO가 유고슬라비아에 폭격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코소보 난민들이 마케도니아(Macedonia), 몬테네그로(Montenegro), 알바니아(Albania) 국경 근방으로 몰려들었다. 3월 말 무렵 시간당 1천 여명의 알바니아계 난민들이 코소보를 탈출했지만 지금은 그 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유럽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난민 위기에 봉착해 있는 만큼 난민 전체를 알바니아가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경 지대에는 난민을 받을 여유가 어느 정도는 있어 보이지만 티라나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알바니아 대통령은 코소보에 지상군을 파견해 세르비아인의 만행을 중단시키고, 대규모 난민 행렬을 막아야 한다고  NATO에 주장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알바니아가 이 분쟁에 말려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국경에 있는 알바니아 마을에는 폭격이 가해지기도 했고 세르비아 군대는 국경을 넘어 알바니아 경비대와 총격전까지 벌였다는 보도가 나돌았다.   

티라나의 주요 공항이 폐쇄된 이후 알바니아를 나가고 들어오는 비행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리스로 가는 도로는 개방되어 있고, 적어도 외관상으로 보기에 이용하기에 별 무리가 없는 듯하다. 남부 알바니아와 이탈리아 및 그리스를 오가는 페리가 간헐적으로 있다.  

 

주요 여행지

티라나(Tirana)

1920년 이후 알바니아의 수도인 타라나는 조그맣고 쾌적하여 걸어서 돌아 다녀도 좋은 곳이다. 이 도시는 로마와 이스탄불의 정 중앙에 위치해 있고, 건축양식은 양쪽 영향을 모두 강하게 받은 것은 물론 소련 영향도 남아있다. 티라나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제일 처음 가는 곳으로는 도심의 야외 공간인 스칸더백(Skanderbeg) 광장이다. 해발 1612m의 마운트 다즈티(Mt Dajti)는 도시 동쪽에 솟아있고, 시내에 있는 시장도 돌아보기에 좋은 곳이다.

국립 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History)은 알바니아 최대(最大)의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그 옆으로는 알바니아 최고(最高) 건물인 15층 짜리 티라나 인터내셔널 호텔  (Tirana International Hotel)이 있다. 알바니아라고 새겨진 모자이크 벽화가 이 건물을 덮고 있다. 동쪽으로는 극장, 레스토랑, 카페, 화랑이 갖춰진 문화 궁전(Palace of Culture)이 있는데 그 투박한 건축양식은 소련의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의 출입구는 건물 남쪽에 있다. 그 맞은편으로는 1793년에 건축되었고 도시를 통틀어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둥근 지붕과 첨탑의 이슬람 사원 에뎀베이 모스크(Mosque of Ethem Mey)가 있다. 1830년에 세워진 티라나 시계탑은 그 사원 옆에 있다.    

한 때 엔버 혹사(Enver Hoxha 동상이 스칸더백(Skanderbeg) 박물관과 국립 은행 사이의 대리석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민주주의 체제로 바뀜에 따라 철거되고 말았다. 그 뒤로 광장 중앙에는 소규모 박람회장이 들어서 있다. 남쪽 라나강(Lana River) 건너에는 이 전에 엔버 혹사 박물관(Enver Hoxha Museum)이었던 건물이 있는데 이 곳은 가끔 전시용 센터로 이용되거나 디스코장으로 변신할 때도 있다. 피라미드 모양의 건물 꼭대기에 있던 빨간 별은 떼어졌다. 좀 더 남쪽으로 Bulevardi\ D?shmor?t e Kombit에는 초현대식 컨그레스 팰리스(Palace of Congress)와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데, 선사 이전부터 중세까지 진귀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티라나에서 제일 저렴하게 숙박하는 방법으로 개인 아파트를 임대하거나, 현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있다. 이전에 저렴했던 국영 호텔들은 폐쇄하거나 새롭게 단장한 뒤로 요금이 상당히 올랐다. 새롭게 생긴 호텔들은 요금이 거의 비싼 편이다. 스칸더백(Skanderbeg) 광장과 Bulevardi D?shmor?t e Kombit에서 값싼 먹거리들을 많이 찾을 수 있고, 조그맣지만 멋있는 술집은 시내 어디서나 있다.    

두르레스(Durres)

티라나와는 달리, 두르레스는 기원전 627년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고풍스런 도시이다. 이 곳은 수세기 동안 아드리아 연안의 최대 항구도시였고, 에그나시아(Egnatia)에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까지 걸쳐 있다. 1939년 이탈리아 군대가 이 곳에 상륙하자 짧지만 거센 저항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때 죽은 사람들은 자유를 향한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순직한 최초의 순교자로 인식되고 있다. 로마가 멸망하자 알바니아 제 2의 도시이자 산업 및 상업 항구인 이 곳은 비잔티움(동로마)의 요새화가 되어 갔다.  

여행을 시작하기 좋은 곳으로는 항구 근처 해안 산책길과 마주하고 있는 고고학 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을 들 수 있다. 박물관 뒤편에는 481년 서고트족의 침략이후 6세기에 세워진 성벽이 있고, 14세기에는 베네치아 타워(Venetian Towers)가 그 둘레로 추가로 건축되었다.  AD 2-4세기 무렵 건설된 로마 엠피시어터(Roman Amphitheatre)는 매우 인상적인 위용을 내뿜고 있고, 성곽 바로 안의 언덕 위에 있다.     선왕인 아마 조그 궁전(Palace of King Ahmet Zog)이 엠피시어터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앞에는 Sk?nderberg 동상이 있고, 이탈리아 군대가 세워놓은 거대한 레이더 안테나가 어울리지 않게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하다. 시내 광장 중앙에 있는 알렉산더 모이쉬 극장(Aleksand?r Moisiu Theatre) 뒤편의 로마 목욕탕(Roman Baths)도 꼭 가볼 만한 곳이다.  이 곳은 티라나에서 서쪽으로 38km 거리에 있고, 기차편이 있다.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Trieste), 앤코나(Ancona), 바리(Bari) 또는 슬로베니아의 코퍼(Koper)에서 이 곳까지 페리 직항편이 있다.      

시코드라(Shkodra)

시코드라는 유럽에서도 유서 깊은 고도(古都)이며 전통적 게그(Gheg)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BC 500년 경부터 부나강(Buna river)과 드린강(Drin river)이 만나는 합류지점인 이 도서 서쪽 너머로 일리리아 요새가 이미 도시 방위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 지역은 코소보로 향하는 도로의 시작 지점이기도 하다. 이슬람 사원인 시익 자밀 압둘라 알 자밀 모스크(Sheik Zamil Abdullah Al-Zamil Mosque)와 옆에 있는 현대화 및 고고학적 가치를 지니는 역사 사진들을 전시해 놓은 뮤지오 포풀러(Muzeo Popullor)가 이 도시의 경관을 새롭고도 인상적으로 보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시코드라는 알바니아에서 카톨릭계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도시인데 무신론 체제 시절 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프랑시스칸 교회(Franciscan Church; 르루가 엔드레 므제다(Rruga Ndre Mjeda))는 그 후 교회로 원상복귀 되기도 했다.  로자파 요새(Rozafa Fortress)는 시코드라 남서쪽으로 약 2km정도 거리에 있으며 시코드라호(Lake Shkodra) 남쪽 끝 부근에 있다. 옛날 성에 갇히게 된 로자파(Rozafa)라는 여자가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 있도록 벽에 구멍을 뚫어 달라고 간청했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오늘날 아기 엄마들은 이 곳 우윳빛 호수물에 그들의 젖가슴을 적시고는 한다.   

성곽 아래로는 둥근 천장으로 된 리덴 모스크(Leaden Mosque)가 있는데 1966년 문화혁명이 일어났던 시절 마을에서 유일하게 잔존한 이슬람 사원이다. 티라나에서 시코드라까지 버스편이 자주 있고, 80km 남쪽에 있는 두르레스(Durr?s)까지는 버스편이 그리 자주 있지 못하다.  

부트린트(Butrint)

사란다(Saranda) 남쪽 18km 부근에 있는 부트린트(Butrint)에서는 멸망한 고대도시의 잔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데 예전 시대의 영광을 느껴보고자 하는 이에게는 일품인 곳이다. 로마의 시인이었던 버질(Virgil)은 트로이사람들이 부트린트를 건설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러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 형편이다. 고고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전쟁 이전 이탈리아는 이 곳에서 수 많은 골동품을 마구잡이로 노략질 해 갔는데 대부분이 다시 반환되어 티라나의 국립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History)에 전시되어 있다. 일리리아인들이 기초를 닦아 놓은 부트린트는 BC 6세기경 그리스인들이 그 기틀을 잡았다. 그리스인들이 상륙할 무렵은 부트린트가 자체 아크로폴리스(성채)를 갖추고 무역 도시로서의 변모를 꾀하던 시기였는데 그 잔재를 이 곳에서 느껴볼 수 가 있다. 아크폴리스 바로 아래 숲에는 BC 3세기에 세워진 극장이 있는데 로마인들이 거주할 당시 공연 문화를 주도하던 곳이다. 그 근방에는 기하학적인 모자이크 설계로 건축된 공중 목욕탕이 있고 숲 깊숙이 좀 더 들어가면 그리스 비문이 있는 성벽 및 동물과 새 문양을 아름답게 장식해 놓은 6세기 무렵의 교회건물이 있다. 좀 더 멀리에서 바라보면 이 곳은 삼각형 구도의 요새로 19세기 알리 푸사 테펠리나(Ali Pasha Tepelena)장군에 의해 지어졌다. 부트린트에서 사란다(Saranda)까지는 차를 이용하는데, 그 곳에서 티라나(Tirana), 블로라(Vlora) 까지는 버스로 연결된다.  

지로카스트라(Gjirokastra)

드리노강(Drino River) 위쪽의 산자락에 자리잡은 로카스트라(Gjirokastra)는 빼어난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마을이다. 13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이었지만 1417년 터키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쇠퇴 길로 접어든다. 그러다가 17세기 자수품, 비단,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흰색 치즈 등의 특산물 매매가 성행하면서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마을 중심부에 있는 바자 모스크(Bazaar Mosque) 위편에는 메메드후 ABC 기념관(M?m?dheu ABC Monument)이 있는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알바니아 교육의 문예부흥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마을에는 14세기에 건축된 성채가 있는데 현재는 군사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엔버 혹사(Enver Hoxha)가 어린시절 살던 집은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민족 박물관(Ethnographic Museum)으로 바뀌었고, 유서 깊은 터키식 목욕탕은 마을 아래쪽에 있다. 지로카스트라(Gjirokastra)는 티라나에서 남쪽으로 120km 거리에 있고 티라나와 사란다간 주고속도로 선상에 위치해 있어 버스 편으로 쉽게 다을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앨바산(Elbasan)

포그라데크(Pogradec)와 두르레스(Durr?s) 중간에 위치한 앨바산은 1974년 중국이 강철 공장을 이 곳에 건설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도시다. 시멘트 공장도 들어서 있어 오염문제가 심각해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완전히 앗아가지는 못한다. AD 1세기경 로마인들이 세운 이 곳은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4세기경 축조된 26개 망루를 갖춘 튼튼한 성곽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1466년 술탄 모하마드 2세(Sultan Mohammed II)는 이 성곽을 재건축하였으며 터키어로 앨바산(요새)이라고 개명했다. 민족 박물관(Ethnographical Museum) 반대편으로는 17세기 무렵 세워진 터키식 목욕탕이 마을 중앙에 들어섰다. 시계탑 근처의 바자 게이트(Bazaar Gate)를 지나 도로 북쪽으로 가다보면 15세기에 건축된 킹스 모스크(King's Mosque)를 지나 세인트메리 정교회(St Mary's Orthodox Church)가 나오는데 벽을 따라 늘어선 돌로 만들어진 아치가 멋스러움을 풍긴다. 앨바산은 티라나에서 남동쪽으로 54km 거리에 있고 버스, 미니버스, 택시, 기차가 매일 운행된다.  

Berat(베렛)

베렛은 알바니아에서 제 2의 박물관 타운으로 꼽힌다. 빨간 지붕 위에는 창들이 수 없이 많이 나 많이 있기 때문에 "창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산마루를 따라 14세기에 세워진 요새가 있고 그 안으로는 Orthodox Cathedral of Our Lady, Church of the Holy Trinity, Church of the Evangelists 등과 같은 소규모 알바니아 정교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성곽 아래 기슭으로는 유구한 세월을 간직한 회교 구역이 있다. 7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다리는 기독교 구역인 고리카(Gorica)로 이어진다. 이 마을에는 리덴 모스크(Leaden Mosque), 킹스 모스크(the King's Mosque), 바첼러스 모스크(the Bachelor's Mosque) 및 이슬람의 한 작은 종파인 데르비시(Dervishes)파가 예배를 보던 알베티 테키(Alveti Tekke)같이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들이 몇몇 눈에 띤다. 베렛(Beret)은 티라나에서 남동쪽으로 122km 거리에 있고, 버스로는 3시간 거리이다.

코카스

코카스는 남동부의 중심 도시로, 그리스 플로리나(Florina) 서쪽 해발 869m의 고원 지대에 있고 오리드호(Lake Ohrid)를 중심으로는 남쪽으로 39km 지점에 있다. 그리스인들이 지배했을 당시부터 카펫과 융단 생산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알바니아 중세미술 박물관(Muzeu i Artet Mesjetar Shqiptar), 교육박물관(Muzeu Historik and the Muzeu i Arsimit Komb?tar)과 같이 아름다운 박물관들이 있다.

1931년과 1960년에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도시의 이슬람 사원과 교회들은 물론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됐지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Kor?a 만이 가지는 독특한 색채를 일리리아 호텔(Hotel Iliria) 서쪽의 특매장에서 여전히 느낄 수가 있다.  Kor?a는 티라나에서 남동쪽으로 179km 거리에 있고, 버스가 운행된다. 이 곳은 또한 그리스의 플로리나(Florina)에서 알바니아로 오는 첫 번째 관문이기도 하다.  

쿠키스

쿠키스은 알바니아에서 가장 아름답게 꾸며진 도시일 듯하다. 피에르자호(Lake Fierza) 위쪽으로 해발 2486m의 민둥산인 마운트 프잘리카(Mt Fjalica) 보다 약간 낮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 이 곳은 코소보에서 내려오는 와이트 드린강(White Drin)과 오리드호에서 발원한 블랙 드린강(Black Drin)의 합류지점에 있었지만 1962년 정부가 수력댐 건설을 결정하면서, 물 속에 잠기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됐다. 이 곳은 며칠 지내기에 유쾌한 마을로, 투리즈미 호텔(Hotel Turizmi)은 국내 최고 레스토랑을 갖춘 최고급 호텔이기도 하다. Kuk?s는 티라나 북동쪽으로 100km 거리에 있고, 미니버스 및 버스가 정기적으로 운행된다.

 

레저스포츠

알바니아의 해변은 그야 말로 환상적이어서 아드리아해와 인도양 해변을 두루두루 여행하면서 즐기기에 한 달은 걸릴 것이다. 대도시를 떠나기 전에 등산용 비품을 충분히 준비만 한다면 내륙의 산림지나 농토를 중심으로 하이킹을 즐길 수도 있다. 장비가 잘 갖춰져 있지는 않지만 여러 산과 절벽에서 마운틴 클라이밍을 할 수도 있다.  해변과 중앙 평원은 나쁜 도로 사정만 빼고는 사이클링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알바니아로 가는 길

앨리탈리어 항공(Alitalia; 이탈리아 항공회사)은 편도 티켓에 대해 비즈니스 클래스 요금을 적용하기 때문에 비행기로 오기에는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다. 대신 말리브 항가리아 항공(Mal?v Hungarian Airlines)은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티라나(Tirana)까지 저렴한 항공권을 제공하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 수도에서 비행기로 올 수 있지만 가장 저렴한 곳으로는 아테네(Athens)를 들 수 있다. 그리스 이오아니아(Ioannina)에서 알바니아 국경 근처의 카카비자(Kakavija)까지는 버스로 가는 편이 제일 간단하며 티라나에서 불가리아의 소피아(Spfia)까지 정기 버스편이 운행된다.   

 과거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국경선을 넘어 올 수도 있었지만 코소보에서의 긴장 상태로 대신 마케도니아에서 국경을 넘을 수 있다. 출발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탈이아에서는 페리로 9시간-25시간 정도 소요되며, 슬로베니아 코퍼(Koper)와 두르레스(Dur?s) 사이도 페리가 운행된다. 알바니아의 출국세는 US$10이다.

국내 교통편

대부분의 알바니아인은 개인 미니버스나 국영 버스를 교통수단으로 삼고 있는데, 이들은 교통편이 잦고 저렴하면서 편리하다. 도로 사정은 열악한 편이고 도로 보수 사정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자가 운전자들은 도시에는 주유소가 있지만 시골에는 거의 드문 편이라는 것을 명심한다. 철도망도 극히 제한적인데, 티라나에서 시코드라(Shkodra), 파이어(Fier), 밸시(Ballsh), 블로라(Vlora), 포그라데크(Pogradec) 까지는 기차편이 매일 있다. 사이클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안전을 위해 적어도 두 명 이상 그룹으로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