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Ukraine)

우크라이나가 내건 슬로건인 '우크라이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여행지가 아닌 듯 하지만 여행을 단념시키진 못한다. 친절한 사람들, 환상적인 건축물, 스텝 대평원지대는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우크라이나는 주변 국가사이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스모그가 많은 공업도시에도 말뚝 울타리, 오리 연못, 짐을 가득 싫은 마차가 아직도 존재한다.우크라이나는 현대적인 수도인 키에브(Kiev)에도 고딕, 비잔틴,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과 예술을 향기가 남아있어 외국 관광객들을 찾아오게 한다. 거의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은 백년 이상 된 성당과 민속 건물 야외 박물관, 미라로 만든 수도승이 있는 동굴과 절묘한 모자이크를 어디서건 볼 수 있다. 음식 역시 훌륭하고 반두라(bandura) 로지는 편안한 휴식을 준다.

우크라이나 지도(9K)


통계 자료

국명 : 우크라이나
면적 : 603,700 sq km
인구 : 52,000,000
수도 : 키에브 (인구 2,600,000)
인종 : 72% 우크라이나인, 22% 러시아인, 벨라루시안, 몰도바인, 불가리아인, 폴란드인, 헝
          가리아인, 로마니아인
언어 :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벨라루시아어
종교 : 우크라이나 정교, 우크라이나 자치 정교, 우크라이나 천주교
정체 : 공화국
대통령 : 레오니드 쿠참 (Leonid D Kucham)
수상 : 발레리 푸스토보이텐코(Valery Pustovitenko)

지리 및 기후

우크라이나는 프랑스보다 조금 큰 크기로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동쪽과 북쪽은 러시아, 북쪽에 벨라루스, 서쪽에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흑해와 아조브(Azov)해가 남쪽에 위치한다. 지형학적으로 대부분 스텝 대평원 지대에 속한다. 서북부에서 남동부로 고지대가 이어지지만 높은 산은 서쪽 끝의 카파티안(Carpathians)으로 짧게 뻗어있고 남쪽은 크림 반도(Crimeans)다. 산림과 습지가 북부에 위치하고 남부의 나무가 거의 없는 광활한 스텝지대와 3,000개의 강이 우크라이나를 흐른다.소련의 곡창지대로 알려졌던 우크라이나는 국토의 절반 이상이 보리, 호밀, 귀리, 사탕무 재배지고,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 중에 하나인 중부의 부식토 지대는 국토의 2/3를 차지한다. 거대한 지역이 방목지로서 봄에는 흔들거리는 마키(maky, 붉은 양귀비 꽃), 소냐쉬니키(sonyashnyky, 해바라기), 황금 겨자의 물결을 볼 수 있다. 평지는 거대하게 조성된 목초지로서 오크, 단풍나무, 리덴, 물푸레 나무 등이 드문드문 보이기도 한다. 버드나무와 포플러 나무는 강을 따라 자라며 얇은 산림 벨트는 북부로 가로지르는데 전나무, 너도밤나무, 오크가 주종을 이룬다. 쉽게 눈에 띠는 동물은 하얀 거위와 오리로 수많은 연못이 전역에 걸쳐있다. 여우, 사자, 담비, 가젤 영양 등의 동물과 350여종의 새, 200여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내륙은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7월이 가장 덮고 온도는 평균 23도이며, 가장 추운 1월에는 영하의 기온을 유지한다. 동부지역은 차가운 시베리아 풍의 영향을 받지만 서부는 따듯한 지중해 풍의 영향을 받아 해안도시인 얄타(Yalta)와 오데사(Odessa)는 내륙도시보다 따듯하다. 내륙은 6-7월이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이고 해안은 12-1월에 거의 비가 오지 않는다.

역사

우크라이나는 역사는 기원전 7-4세기 스키티아인(Scythias)에 의해 스텝지대부터 흑해 북부지역을 지배받으며 시작됐다. 스키티아 문화의 흔적은 동물과 인간을 자세히 묘사한 뛰어난 금 세공품이 남아있는 키에브의 동굴 수도원(Cave Monastry)에서 찾을 수 있다. 스키티아인에 이어 오스트로고스(Ostrogoths), 훈(Huns), 투르크-이란 카자(Turko-Iranian Khazars)의 지배를 받는다. 스칸디나비아인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장기간 지배했는데, 키에브는 기원전 882년 러시아에게 점령당한 후 10세기까지 다뉴브강 서쪽의 볼가(Volga)에서 발틱해의 남부에 이르는 영토였던 키에브인 러시아(Kievan Rus)의 중심도시 역할을 했다. 키에브인 러시아의 지도자인 볼로드미르(Volodmir)는 988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현재의 이스탄불)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여 정치와 문화적으로 비잔틴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1520년에는 오스만 제국이 우크라이나의 해안지역을 통제했다.  15세기에 전쟁과 전염병의 많은 인구가 사망했으며, 인접 국가의 카작인(kazaks, 코삭 인Cossacks) 농노와 정교도 피난민들의 우크라이나로 이주해왔다. 우크라이나인 코삭(Ukrainian Cossacks)은 공식적으로 폴란드의 통제를 받고 있었으나 결국 국가를 만들어 자치를 했으나 20년 후 폴란드와 러시아로 분리됐다. 1940년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대두로 러시아는 학교에서 우크라이나 언어 교육, 언론과 책을 금지시켰다.  1차대전 후 전제군주제가 붕괴돼 우크라이나는 독립의 기회를 얻었으나 당파로 인해 내전이 발발하고 6개의 군대가 키에브를 일년동안 다섯 번이나 바꿔 통제하는 무정부상태를 야기했다. 러시아와 폴란드가 개입한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인종적 당파간의 연속적인 전쟁의 결과로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의 서부를 러시아가 나머지 우크라이나를 차지하게됐고 1922년에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한 부분으로 편입됐다. 스탈린이 권력은 잡은 1927년 우크라이나에 억압을 가했고 1932-33년의 기근으로 7백만명이 사망했다. 지식인에 대한 사형과 강제출국은 인구감소를 심화시켰고, 스탈린은 종교정책으로 250개의 교회와 성당이 파괴됐다. 1937-39년의 숙청기간동안 백만명이 사형을 당하거나 소련의 강제 노동수용소로 보내졌으며, 2차 대전동안 소련과 독일군의 전쟁으로 6백만명이 추가로 사망하거나 강제출국 당했다. 20세기 초반 50년 동안의 전쟁, 기근, 숙청은 우크라이나 남자의 50%, 여자의 25%에 해당하는 사람이 죽는 대가를 치뤘다. 1989년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소련의 느린 보상으로 인해 광범위한 반소련 감정이 일어났다. 키에브의 지식인과 작가가 중심이 되 일어나 재건설을 위한 우크라니아 민족운동은 1990년 선거에서 다수석을 차지하게 했다. 7월에 국회는 자치권을 선포했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91년 8월에 발생한 소련 쿠테타의 실패로 우크라이나 공산당(Commist Party of Ukraine, CPU)의 활동이 금지됐고 12월에 국민의 지지를 얻어 독립해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의장이었던 레오니드 크라브훅(Leonid Kravchuk)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파주의로 인해 92년 9월 정부는 사임을 하게되고 러시아의 핵무기와 흑해 함대(크림 반도의 항구인 세바스토폴Sevastopol) 문제로 인해 양국간에 긴장이 고조됐고, 높은 인플레이션과 기름 부족, 구매력 감소로 경제 위축과 더불어 지역간, 인종간 격차가 더욱 심화됐다. 친 러시아 인사인 러오니드 쿠차마(Reonid Kuchma)가 94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고 우크라이나 공산당이 다수당이 됐다. 9년대 후반은 우크라이나와 NATO의 외교관계로 인해 러시아와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경제

GDP : US$ 175billion
1인당 GDP : US$ 3,370
경제 성장률 : -4%
인플레이션 : 9%
주요 산업 : 석탄, 전기 발전, 광속, 기계류, 운송장비, 농업
주요 교역상대국 : 러시아, 중국, 이태리, 스위스

문화

술은 풍부하며 보드카를 즐겨 마신다. 서양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보쉿(빨간 순무가 든 러시아 스프), 그림을 그린 계란, 유명한 카삭 노래와 춤을 추는 전통은 우크라이나에서 기원한 것이다. 서 우크라이나인은 자신들이 순수한 우크라이나인으로 차처하고 있으며 문화의 선봉으로 우크라이나 언어를 쓰고 민족주의를 퍼뜨린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동부지역은 천만명의 러시아인이 살고 있으며 민족주의도 약하고 대부분 러시아어를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 벨라루스어와 같은 동부 슬라빅 언어로 불가리아에서 전래된 정중한 슬라브 교회 이전의 키에브에 있던 9세기 스라브어와 가장 근접한 언어다. 러시아와 폴란드는 1876년 짜르 알레산더(Tsar Alexander) 2세 때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금지 시켰으나 현재까지 보존되고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1990년에 우크라이나어가  공식언어로 정해졌으며 러시아어도 통용된다. 우크리이나 문학작품은 12세기의 슬로보 오 폴쿠 이레빔(Slovo o Polku Ihrevim- Tale of Ihor's Armament)같은 중세 슬라브의 연대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 문학의 시작은 '우크라이나의 소크라테스'로 칭송 받는 18세기의 흐리홀리 스코보로다(Hrihorli Skovoroda)가 우크라이나어로 쓴 시와 철학 책으로 지식인보다는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타라스 쉐브첸코(Taras Shevchenko)는 농노 출신의 국민적 영웅으로 최초의 대중적인 작가로 그의 작품은 우크라이나 문학의 황금기를 열었다. 20세기 초반의 가장 능력 있고 다작의 작가인 이반 프랑코(Ivan Franco)는 소설, 시, 드라마, 철학과 동화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썼다. 많은 작가들은 소련의 지배동안 고통받은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고, 불일치의 고뇌를 시로 쓴 Winter Trees('68), Candle in the Mirror('77)의 작가 바실 스투스(Vasyl Stus)는 소련의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사망하기도 했다. 키에브의 우크라이나 작가 연합은 91년 독립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음악은 백년이상 된 서사시와 코삭인의 업적을 찬미하는 발라드 서정시인 두마스(dumas)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속 음악은 16-17세기 음유시인인 코즈바(kozbar)의 기타와 비슷한 악기인 코즈바(koaba)로 연주한 코삭 영웅의 노래가 기원이다. 45개의 현으로 된 커다란 악기인 반두라(bandura)는 18세기에 들어 코즈바를 대체했고, 반두라 성가대가 대유행하였으며 악기는 국가의 상징이 됐다. 키에브의 반두라 성가대는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클래식 작고가 중에는 우크라이나 민속 노래 피아노 작품으로 유명한 미콜라 리센코(Mykola Lysenko)가 있고, 현대 음악은 펑크 밴드인 플라치 예렘릴(Plach Yerelyl)과 싱어 송 라이터인 니나 맛비엔코(Nina Matvienko)가 유명하다. 우크라이나에 기독교는 10세기에 전래돼 천주교와 정교도로 1054년 분리된 후 정교도는 러시아 정교와 로마 천주교의 다른 영향을 받아 3개의 큰 종파로 나뉘어졌다. 교회건물은 나무로 만든 독특한 양식으로 박공구조와 지붕 널로 된 돔과 큐폴라스(반구 천장)가 못을 쓰지 않고 만들어져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막기 위해 소련은 12세기의 성당을 포함해 백여개의 신성한 건물을 1930년대 파괴시켰다. 그림은 지붕에 종교적인 주제를 그렸고, 17세기에는 예수, 성모 마리아, 천사, 성인의 작은 이미지를 라임나무에 그렸다. 코삭인의 부흥으로  민족주의를 주제로 한 종교 미술 학교가등장했고, 소련의 현실주의 등장으로 실험적 작품과 민족주의 주제가 다시 유행했다. 우크라이나 음식은 곡물과 감자, 배추, 콩, 버섯 같은 채소가 주요산물로 채식이 주를 이루며 고기는 대부분 쌂거나 볶아 먹는다. 디저트는 체리나 자두가 꿀과 함께 서빙된다. 라레니키(varenyky)는 작은 만두로 인기 있는 스낵이고 돼지 비게인 살로(salo)는 신성한 음식이다. 살로의 전통은 1세기가 넘는 것으로 프랑스인이 와인에 매혹된 것처럼 우크라이나인도 살로에 매혹돼있다. 보쉿(borscht)은 우크라이나에서 유래한 스프로 전국적으로 즐기고 있고, 소고기와 야채 스프는 전통적으로 크림과 같이 서빙된다. 우크라이나 음식을 제대로 맛볼려면 현재인 가정을 방문해야모순적으로 맛있는 우크라이나 음식은 우크라이나에서 찾기 어려운데 대부분의 고급 레스토랑은 유럽스타일의 음식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축제 및 행사

우크라이나는 신년에 휴일 축가를 부르며 정교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이다. 파스카(paskha, 부활절)는 정교도 교회의 연중 가장 큰 축제로 자정 예배로 시작해 전국적으로 교회 주변에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르비브(Lviv)에서 열리는 국전기간인 5월은 음악과 극장공연이 한달 내내 이뤄진다. 수도에서는 5월 마지막 주말에 키에브의 날이라는 봄 축제가 있다. 8월에는 크림 반도 축제가 얄타에서 열린다. 8월 28일에는 포차일브(Pochaylv)의 수도원에 성모취임 대축일을 기념하기 위한 순례자들이 모여든다. 8월 24일 독립 기념일은 도시마다 공연과 특별 행사를 실시한다.

여행자 정보

비자 : 모든 방문자는 비자를 획득해야한다. 국경에서는 72시간 유효한 긴급 비자를 발급하고 1개
          월 비자는 키에브 보리스필 공항에서 발급 받을 수 있다.

보건위생 : 콜레라, 디프테리아, 기면성 뇌염
시간 : GMT + 2시간
전압 : 220V, 50Hz
도량형 : 미터법 (도량형 환산표 참조)

경비 및 환전

통화 : 우크라이나 그리니아 (grynia, UHA; 가끔 hryvnia로 표기하기도 함)
일반 경비 :
저렴한 현지 식사 : US$1-3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 US$3-8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 US$8 이상
저렴한 숙소 : US$5-15
중급 호텔 : US$15-25
고급 호텔 : US$25 이상

음식가격이 상당히 싼 편이고 숙소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편하게 여행을 하려면 하루에 US$50은 필요하며 수도인 키에브는 가격이 15-30% 높다. 중급 가격대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중급 호텔에서 잔다면 하루 US$30 정도면 충분하다. 직접 요리를 하고 도미토리에서 자고 일반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경비는 더 줄어들 것이다.  환전소의 환율은 호텔보다 높고, 경화은 어디서나 그리니아로 환전이 가능하지만 여행자 수표와 신용카드는 은행과 대도시의 일부 환전소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현금을 들고 다니는게 여행에 편리하며 미국 달러와 독일 마르크가 일반적으로 유리하다. 경화를 식당과 상점에서 사용하는 건 공식적으로 금지돼있지만 외국인 여행자들이 오는 곳에서는 경화가 통용된다. 여행자들을 위한 고급 식당은 5%의 서비스 요금이 영수증에 포함되지만 10-15%의 팁을 추가로 주는 게 좋다. 기념품, 수공예품 시장에서는 가격 흥정을 하는 게 바람직하고 가끔 불쾌한 경험을 당할 수도 있다.

여행 시기

우크라이나의 여행시기는 4월말부터 6월초의 봄 시즌으로 나무와 꽃들이 만발해 있고 여름에 비해 비가 적고 복잡하지 않은 시기다. 오데사와 크림반도의 해변은 여름에 붐비며 겨울은 춥고 눈이와 여행에 필요한 두꺼운 옷을 준비해야한다.

주요 여행지

키에브(Kiev)

5세기에 형성된 도시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의 기원이 되는 도시다. 3개의 국가는 9-11세기 슬라브의 강대한 국가인 키에브인 러시아(Kievan Rus)에서 유래됐다. 그 후 키에브는 몽고의 침략, 사회주의자의 도시화 정책, 세계 2차 대전간의 대규모 파괴로부터 살아 남았다. 구시가(Old Town)는 부리차야 볼로디미르스카(vulitsya Volodymyrska)의 동북부 주변으로 키에브의 역사적인 장소가 모여있다. 11세기에 지어진 키에브에서 가장 오래된 성 소피아 성당이 가장 큰 볼거리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가 잘 보전돼 있다. 성당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부리차야 크레쉬차틱(vulistya Khreschchatyk)이다. 크레쉬차틱의 남쪽 끝은 베사랍스키(Bessarabsky) 시장으로 과일과 야채 노점상이 가득하다. 구시가는 키에브 도심에서 걸어서 다녀 올만한 거리에 있다.  키에브에서 가장 매력적인 거리인 안드리이브스키 브즈비즈(Andriyivsky vzviz)는 구시가에서 역사적인 상업지구이며 항구인 포딜(Podil) 구역으로 이어진다. 안드리이브스키는 미술관, 상점, 식당과 카페가 즐비하고 포딜의 중앙은 콘트락토바 프로쉬차(Kontraktova ploschcha)로 크고 하얀 콘트락토바 딤(Kontraktova Dim)이 중앙에 위치하는 공원같이 생긴 광장이다. 1871년부터 건물 안에는 식당, 미술관, 사무실이 가득히 들어서 있다. 북서쪽으로 조금 가면 역사상 최악의 핵 참사였던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문서를 전시한 체르노빌 박물관이 있다. 체르노빌은 박물관으로부터 북으로 불과 100km 떨어져있다. 남쪽은 포딜에서 가장 오래된 1631년의 미콜라 프리티스코 교회가 있는데 우크라이나 바로크 건축양식의 표본이 되는 건물이다. 구시가의 남부는 강을 따라 있는 페처스크(Pechersk) 구역은 역사적으로 성직자들의 중심역할을 한 곳이며 1051년에 건설된 동굴 수도원(Caves Monastery)이 위치한다. 중심으로 몇 킬로 벗어난 남쪽은 나무가 심어진 경사지로 황금 돔으로 된 교회, 미라가 된 수도승들이 있는 지하 미로, 한 때 스키티아인의 금을 저장했던 박물관으로 쓰이는 우아한 모자이크 건물이 있다. 11세기에 건설된 수도원의 일부로 사용되던 도미션 성당(The Dormition Cathedral)은  2차 대전 당시 러시아 붉은 군대에 의해 일부 파괴되긴 했지만 우크라이나 바로크 양식 건물 중 가장 훌륭한 건물이다. 성당의 북쪽은 역사 보물 박물관으로 가공물과 보석, 귀금속을 전시하고 있고 기원전 4세기부터 만들어진 스키이타인의 금 세공품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다. 또한 키에브의 12세기 모델과 우크라이나, 러시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장인들이 만든 고블렛(손잡이 없는 술잔), 십자가, 술잔이 장식되어 있다. 도시 버스들 이용해 키에브 도심에서 페처스크 구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민속 건축 박물관은 키에부에서 남쪽으로 12km 떨어져 있는데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 경치가 좋은 언덕에 17-20세기의 목조 가옥, 교회, 농장, 풍차가 많이 보이며 아름다운 정원과 실내 가구가 잘 보존되어 있다. 박물관은 지역적 특색에 따라 7개의 작은 마을로 구분돼있으며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있고 특별 이벤트가 열린다. 키에브에서 버스로 방문이 가능하다.

르비브(Lviv)

우크라이나(Western Ukraine)의 수도인 르비브는 1939년까지 한번도 러시아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1980년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다시 발생한 도시다. 2차 대전의 피해를 입지도 않아 르비브는 고딕양식부터 현대의 건축까지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서부 건축 박물관이다. 사회주의 기간의 기괴함과 좁고 오래된 골목길과 색채감 넘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가볼 만한 곳이다.  신시가의 중심가 바로 동쪽이 구시가로 프로쉬차 리녹(Rynok)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잘 보존된 도시 광장을 위치한다. 19세기의 시청과 그 주변은 아름다운 지나치게 정교 석조 조각이 있는 16-18세기 건물들이 있다. 남서 코너의 반대편에 있는 로만 카톨릭 성당은 르비브에서 가장 훌륭한 고딕양식 건물로 14세기에 지어졌다. 성당 안에 있는 보임 예배당(Boyim Chapel)의 석조 조각은 환상적이다.  남동부 코너의 반대편에는 르비브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있는데 1735년에 생긴 곳으로 16세기 거물인 압테카 박물관(Apteka Museum)과 같이 사용되고 있고 약제기구가 전시돼 있다.  르비브의 대중 건축과 생활 야외 박물관은 구시가에서 2km 떨어져 있으며 100여개의 목조 농장, 대장간, 풍차, 교회, 학교가 60헥타에 걸쳐있다. 전국의 민속 전통에 따라 건물들은 매일 쓰는 물건들로 치장돼 있고 버스와 트램이 박물관으로 운행된다.

얄타(Yalta)

크림반도의 남부 해안에 위치한 얄타는 18세기에 러시아의 지배를 받기 시작해 흑해의 전형적인 리조트로 발전해 갔고 짜르 알렉산더 2세의 여름 별장이 인접한 리바디아(Livadia)에 위치했다. 러시아 혁명 전에는 귀족들의 소유지였으나 혁명 후에는 노동자들의 휴양소로 사용됐다. 얄타의 중심가는 얄타만의 동쪽 끝에서부터 이어진다. 모든 이들에게 매력적인 차가 없는 강변 산책로인 나베레즈나 레니아(naberezhan Lenia)는 선착장, 야자수, 자갈이 많은 해변, 상점, 예술품 시장이 있다. 얄타의 가장 좋은 해변은 비스트라(Bystra) 입구의 서쪽에 있는 얄타만에 있다. 얄타만의 절반에 이르는 길과 나베레즈나의 뒷편은 의자식 리프트가 있고 사원처럼 생긴 전망대가 언덕에 있다. 리프트의 서북부는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Alexander Nevsky Cathedral)으로 신 비잔틴 양식의 건물로 백년 전에 지어졌다. 위대한 러시아의 극자가인 안톤 체홉(Anton Chekov)의 팬이라면 그의 생애 마지막 5년을 보낸 체홉 생가 박물관을 방문할 것이다.

오데사(Odessa)

오데사는 유혹직인 해변 휴양지이며 매연이 심한 공업 항구이기도 하다. 흑해에서 오래된 선박기지이며 우리크라이나 남부의 중심 도시로 1905년의 혁명 당시 반체제 노동자들을 지원한 전쟁선 포템킨 타브리체스키(Potemkin Tavrichesky)의 반란의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박물관의 훌륭한 소장품으로 인해 도시가 잘 알려져 있다. 도시의 중심부는 해안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에 있는데 아름다운 저층 건물, 가로수가 이어진 길, 오페라와 발레 극장으로 이루어져있다. 1880년 비엔나 건축 디자인으로 지어진 극장은 바로크와 르네상스의 향기가 혼재해 있다.인접한 파사즈(Pasazh)는 호화스런 쇼핑 몰이 들어서 있다. 도시 중심부는 오데사의 유명한 박물관들의 현장이기도 한데 고고학 박물관은 1875년에 설립돼 보석과 동전을 포함해 흑해 문명의 창조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길 건너에 있는 해양 역사 박물관은 선박제조, 항해술 모델, 해군 장식품이 전시돼 있다. 문학 박물관에는 세브첸코(Shevchenko), 프란코(Franko), 체홉(Chekov), 푸쉬킨(Pushkin), 톨스토이(Tolstoy), 고르키(Gorky)의 작품을 맛 볼 수 있다. 오데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거대한 포템킨 계단으로 1925년 아이센스타인의 영화 전쟁선 포템킨(Battleship Potemkin)의 촬영장소였다.  카타콤비(katakombi)로 알려진 오데사에 있는 1,000km의 터널은 19세기에 건설됐는데 밀수꾼, 혁명 당원, 2차 대전 당시의 게릴라들의 피신처로 사용됐었고 게릴라 대원이 만든 터널안의 피난처는 박물관(Museum of Partisan Glory)으로 쓰이고 있고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 투어를 실시하고 있다. 카타콤비는 버스로 이동이 가능하다.

카미아넷-포딜스키(Kamyanets-Podilsky)

카미아넷-포딜스키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루마니아 만나는 국경에 접하는 도시로 11세기부터 깍아지른 듯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바위섬으로 스모트리치 강(Smotrich River)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가파른 길이 있다. 남서쪽에 있는 다리는 100년간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량으로 16세기의 9개의 탑이 있는 성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대부분의 탑은  공개되어 도시의 경관 뿐 아니라 주변의 지형을 조망할 수 있다. 민족학 박물관은 민속 공예품과 성에서 발견된 것들이 전시되고 있다. 자갈로 된 길을 따라 성에서 내려가면 아르메니아 지구가 나오는데 14세기에 만들어진 시장광장과 15세기의 교회가 남아있다. 광장의 북서쪽에 있는 1580년에 건설된 피터와 폴의 성당(Cathedral of SS Peter & Paul)은 승리의 문(Triumphal Gate)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투루크의 지배 당시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고 첨탑이 세워졌으나 성당을 다시 회복한 후 기둥의 끝 부분에 금으로 된 성모마리아 상을 추가했다. 광장 북쪽은 도미니칸 수도원과 교회로 높게 주조된 종탑이 있다. 수도원의 북쪽은 14세기 시청 건물로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오래된 시청 건물로 2차 대전을 기념하기 위한 작은 박물관으로 현재 사용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포차이브(Pochayiv)

키에브에서 동굴 수도원을 방문했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포차이브의 수도원을 방문해 보라.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우크라이나인에게 신성한 곳으로 종교적 축제기간에는 순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우스펜스키 성당(Uspensky Cathedral)은 바로크 양식의 성당으로 실내는 6,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압도적인 표현의 정교 도해서는 화려하고 뛰어난 성인과 총주교의 그림이 벽면에 빛나고 있다.  100년 전에 지어진 황금 돔의 트리니티 성당(Holy Trinity Cathedral)은 우스펜스키 성당보다 작고 어둡지만 거대한 기둥과 얇은 아치형 천장은 유심론의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 트리니티 성당의 서쪽에는 19세기 중반의 종탑이 있는데 높이 65m, 무게 11,180kg의 바로크 양식 탑으로 내려다보는 전망이 나쁘지 않다. 포차이브는 서 우크라이나 중부에있는 도시로 키에브에서 300km 서쪽에 있다. 크레메넷(Kremenets, 소요시간 40분), 테르노필(Ternopil, 소요시간 2시간), 르비브(Lviv, 소요시간 6시간)에서 오는 버스는 수도원 서쪽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정차한다.

체르닙시(Chernivtsi)

150년간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 난 체르닙시는 우아하고 국제적인 중앙 유럽 분위기의 도시다. 혼합된 역사로 인해 비잔틴에서 바로크까지 다양한 형태의 건축 양식과 고상한 거리의 구시가 지구가 있다. 3차선의 부리차야 오 코비리안스카(vulitsya O Kobylyanska)의 보행자 거리는 카페, 레스토랑,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매우 다른 매우 오스만적인 체르닙시의 정원들은 목조 발코니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 코비리안스키의 동쪽에 있는 아르메니안 성당은 19세기의 건물로 고대 아르메니아 디자인 양식으로 건설됐다. 실내는 지나치게 정교한 그림과 아름다운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구시가의 광장은 쩬트랄나 프로쉬차(Tsentralna ploshcha)는 19세기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 중 지역 박물관(Regional Museum)이 가장 흥미 있는 곳으로 중앙에 계단이 있는 아트 노보(Art Nouveau) 건물이다. 20세기 그림과 윤색된 민족학적 전시품이 실내에 있다.키에브에서 400km 서남쪽에 위치하며 기차로 11-13시간 소요되고 버스는 기차보다 오래 걸리며 작은 공항이 있다.

체르니히브(Chernihib)

8세기에 형성된 체르니히브는 우크라이나의 11-12세기 종교적인 건물이 있는 도시로 키에브 러시아제국의 공국 중에 하나였다. 프로쉬차 체르노바(ploshcha Chernova)를 조금만 벗어나면 사랑스런 피앗닛스카(Pyatnytska) 교회가 나오는데 12세기에 만들어진 교회로 1960년대에 재건설돼 키에브 러시아제국의 양식이 남아있고 외부의 벽돌공사는 석공기술의 진수를 볼 수 있다.남동쪽에 있는 디티넷(Dytynets)은 낙엽이 가득한 공원주변으로 종교적인 건물이 있는데 이 중 2개의 미사일처럼 생긴 종탑이 있는 스파소-프레오브라젠스키(Spaso-Preobrazhensky) 성당은 어둠고 신비스런 실내에 키에브 러시아 왕실의 무덤이 있다. 12세기에 건설된 보시소-흐립스키(Boryso-Hlibsky) 성당은 성당의 역사와 디티넷 지역의 박물관 역할을 한다. 체르니히브 역사 박물관은 19세기의 신고전주의 건물로 키에브 러시아제국, 코삭 전쟁용품, 유명한 1851년에 슬로빅어로 처음 쓰여진 오스트로 성경을 전시하고 있다. 키에브에서 100km 동북부에 있으며 버스와 기차가 두 도시를 정기적으로 운행한다.

레저스포츠

크림반도와 카파티안스(Karpathians)는 도보여행, 트레킹, 캠핑하기에 적당한 국립공원들이 산재해 있다. 크림반도의 남서쪽은 도보여행하기 쉬운 동굴 도시인 쿠프트-칼레(Khuft-Kale)와 만훕-칼레(Manhup-Kale)가 있고, 트레킹은 300m의 볼쇼이 캐논(Bolshoy Kanyon), 드주르-드주르(Dzhur-Dzhur), 우찬수(Uchansu) 폭포가 하이라이트 지역이다. 정밀한 지도만 있다면 카파디안스의 어디든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데 이 지형은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경관이 뛰어나다. 키에브에서 남서쪽으로 500km, 콜로미야(Kolomyya)에서 남서쪽으로 50km 떨어진 카파티아 국립공원이 트레킹하기에 적합하다. 드닙로(Dnipro)를 따라 키에브에서 오데라로 가는 보트 여행은 쉬면서 재미있게 우크라이나를 여행하는 방법이다.

우크라이나로 가는 길

키에브는 유럽의 주요도시와 북미 도시로부터 연결이 된다. 대부분의 국제 노선은 보잘것  없는 키에브의 보리스필 국제공항으로 운행되는데 도심에서 40km 외각에 공항이 위치한다. 르비브 공항은 도심에서 8km 떨어져 있으며 바르샤바, 프라그,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런던과 시카고로 국제선이 취항한다. 오데사 공항은 베니스와 모스크바로 가는 국제선이 있다. 국제 기차는 7개의 국가로부터 10개의 도시로 운행되는데 비자를 입국 전에 획득했다면 육로 입국에 지장이 없다. 우크라이나의 중요도시는 모스크바 행 국제 기차가 매일 운행되는데 키에브에 15시간, 르비브에서 28시간이 소요된며, 키에브에서 브레스트(10시간)와  바르샤바를 경유해 베를린(26시간)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기차역은 키에브의 서쪽 가장자리에 있다.르비브에서 출발하는 국제 기차는 중요 동유럽의 도시와 러시아의 도시를 연결하며 기차역은 서쪽으로 3km 떨어져 있다. 카키브(Kharkiv)에서는 러시아 행 버스가 하루에 두 세 차례 운행되는데 모스크바까지는 20시간이 걸린다. 오데사와 얄타에서는 선박으로 이용해 흑해 연안 도시나 지중해지역의 도시로 여행이 가능한데 하이파(이스라엘), 리마쏠(싸이프러스), 피리우스(그리스), 포트 사이드(이집트) 항로가 있는데 이스탄불 항로가 가장 빈번하고 믿을 만 하다. 또한 오데사에서 다뉴브 강을 따라 동유럽의 강변 항구도시로 이동할 수도 있다. 크림반도의 케르치(Kerch)에서 러시아의 템리육(Temryuk), 아나파(Anapa), 노보로스리스크(Novorosslysk)까지는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선박이 운항되고 있다.우크라이나의 육로 국경 통과는 비자를 입국 전에 취득했으면 입국에 불편은 없으나 국경에서 긴급 비자를 받을 경우 입국이 거부될 경우도 있는데 특히 러시아에서 입국 시는 비자를 미리 취득 하는게 현명하다.

국내 교통편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간을 이동하는데는 버스보다 기차가 유용하다. 자주 운행되고 싸며 밤 여행에 편리하다. 그리니아를 절약하고 지체되는 시간을 상관치 않는다면 버스도 유용한데 특히 기차가 다니지 않는 소도시를 이동하는데 편리하다. 버스는 항상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는 힘든 여행은 현지인을 만나는 것 이외에는 장점이 없다.  기름의 공급이 원할치 않고 부품 구하기가 어렵고 도로사정이 나빠 우크라이나에서 운전하는 건 권할만한 일이 아니다. 키에브의 고급호텔과 대도시에 렌트카 회사가 있는데 국제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운전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