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Jordan)

성경 이야기, 잃어버린 도시들, 아라비아의 로렌스 - 요르단은 모든 것이 낭만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히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어야만 하겠지만 중동의 나쁜 평판은 관광객들을 무더기로 쫓아보냈다. 그러나 잊지 말자. 요르단은 전체적으로 볼 때 평온한 나라이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따뜻하고 손님을 환대하는 국민들 중 하나이며 이 지역의 다른 곳과 달리 위압적인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어느 곳에서 몇 시간 동안 거리에 짐을 놔두어도 안전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또는 카페트 장사꾼도 아니면서 처음 보는 사람을 따뜻하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사람들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이곳은 단순히 요르단인과 차 한잔을 할 만한 곳에 그치지 않는다. 요르단은 중동에서 가장 극적인 두 곳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바테 인들의 고대 도시인 페트라(Petra)는 세계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유적 중 하나이다. 조금 더 명상적인 경험을 원한다면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매혹시켰던 와디 룸(Wadi Rum)의 놀라운 사막 풍경이 여행자들로 하여금 카피어(아랍인의 두건)을 쓰고 지긋이 먼 사막을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요르단 지도(12K)

통계 자료

국명 : 요르단 하세미트 왕국(Hashemite Kingdom of Jordan)
면적 : 91,860 sq km
인구 : 495만 명
수도 : 암만(Amman, 인구 158만)
인종 : 아랍인(60% 팔레스티나인, 상당수의 난민), 체르케스인, 체첸인, 아르메니아인  
언어 : 아랍어
종교 : 이슬람교
정체 : 전제 왕정(최근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수장 : 압둘라 후세인 왕(Abdullah Hussein)

지리 및 기후

요르단은 북쪽으로 시리아, 북동쪽으로 이라크, 동쪽과 남쪽에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서쪽으로 이스라엘과 접해 있다. 요르단은 세 곳의 다른 지역으로 나뉜다. 비옥한 요르단 계곡은 국토의 서부를 지나며 동부 고원은 대부분의 도시들이 자리하고 있고 동부 제방(East Bank)은 동쪽으로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이어진 사막이다. 요르단은 이상하게 생긴 작은 나라이다. 전해 오는 얘기에 따르면 동부의 울퉁불퉁한 국경은 처칠이 질퍽한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정했다고 한다.북부의 소나무 숲은 요르단 계곡의 경작된 경사면으로 이어져 삼나무와 올리브, 유칼립투스 나무로 덮여 있다. 사해를 향해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식물들이 살수 없는 곳으로 풍경은 진흙과 염전으로 덮여 있다. 사막 지역은 보통 사막에 사는 동물들, 낙타나 사막 여유, 모래쥐, 토끼, 날쥐 등이 살며 사해 북동쪽의 고원은 멧돼지와 오소리, 거위 등을 볼 수 있다. 요르단은 특히 해양 생물로 유명하여 아카바(Aqaba) 만은 다양한 열대어나 산호가 산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보호구역은 동쪽에 있는 샤우마리(Shaumari)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한때 요르단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영양과 오릭스 영양이 다시 불어나고 있다.기후는 국토의 끝과 끝에서 극심하게 변한다. 요르단 계곡은 여름에 엄청나게 더우며(보통 40도) 암만과 페트라는 종종 겨울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고원 지역은 보통 따뜻하고 건조하여 20도에서 30도 사이를 오르내리고 사막은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겪어서 낮 동안은 타는 듯이 덥고 건조하며 중앙아시아에서 차가운 바람이 가끔 불어온다

역사

20세기 초까지 요르단은 현재 대부분 이스라엘의 영토인 팔레스타인의 일부였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요르단 강 서안의 고고학적 유물은 BC 9000년 전의 것들까지 있다. BC 3000년 전부터 이 지역에는 가나안 인들과 아모리트인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그들 다음에는 수메르(Sumer)와 아카드(Akkad)의 왕인 사르곤의 군대가 들어왔다. BC 1800년경에는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목민들을 이끌고 가나안 산맥에 정착했다(이 지역은 현재의 이스라엘과 대충 일치한다). BC 1023년 이스라엘인들은 사울과 다비드가 이끈 왕국을 형성했고 예루살렘을 장악하여 수도로 정했다. 거칠 것 없이 영토를 확장하던 로마는 BC 63년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헤롯왕이나 빌라도 총독을 비롯한 여러 집정관의 지배하에 두었다. 이 지역에서 예수가 태어나 설교하던 것은 이 당시로 믿어지고 있다. 칼리귤라 밑에서 점점 미쳐가던 로마는 일련의 유태인 반란을 촉발하였으며 몇 년간 지속된 이 반란은 결국 진압되어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팔레스티아 주가 선포되었다. 이 패배는 유태인 국가의 종말을 고했으며 세계 각지로 유태인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시발점이 되었다.AD 33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전에 불법적이던 이 종교를 국교로 인정하였다. 갑자기 모두가 성지와 예수의 무덤이나 탄생지 등을 포함한 많은 건물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종교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 나라를 지배한 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638년 예루살렘은 오마르(Omar) 왕에게 함락당하여 모하메드가 성전의 꼭대기에서 천국에 오른 이슬람의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되었다. 기독교 세계는 이러한 것에 반대하여 십자군을 조직하였고 1099년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닥치는 대로 살육하며 거의 100여 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십 년의 기독교/이슬람교의 다툼 끝에 1187년 이슬람의 손으로 다시 넘어갔고 이슬람의 맘룩 왕조는 1291년 마지막 십자군 성채를 함락시켰다.이후 500년 간 팔레스타인은 매우 조용했다.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이 나라의 지배권은 단조롭고 규칙적으로 옮겨갔지만 결국은 오토만 제국의 지배로 결말을 맞게 되었다. 많은 사막의 요르단인들은 이런 변화를 피해 베두인의 성채에 남았다. 오토만 제국이 1차 대전 이후 무너지면서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했고 압둘라 왕의 지배하에 트란스요르단(Transjordan)을 만들었다.1948년 이스라엘의 아랍인과 유태인은 서로 전쟁을 시작했다 - 모든 사람들이 이 전쟁에 마음을 빼앗겨 있는 동안 트란스요르단은 강 서안과 예루살렘 일부를 점령하고 국가명을 요르단으로 고쳤다. 1953년 후세인 왕이 즉위하면서 요르단은 관광산업과 미국으로부터의 원조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7년 6일 전쟁은 이스라엘이 강 서안과 거대한 구경거리인 예루살렘의 반을 다시 차지함으로써 요르단에서 싹트기 시작한 관광산업을 망쳤다. 6일 전쟁 동안 요르단은 돈벌이가 될만한 땅들과 농지를 잃고 대신에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도망친 수천 명의 난민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970년대까지 난민 인구의 PLO세력은 후세인 왕의 권력을 위협하였으며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시작되어 급진주의자들의 대부분은 레바논으로 넘어갔다.1995년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경제 장벽을 없애고 안전과 수자원을 공유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팔레스티나인들로 하여금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자기들끼리 이권을 챙김으로써 자신들은 지역에서 제거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낳게 하였다. 동시에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국가 평의회 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와의 연계도 강화하며 협정을 맺으려 노력했다. 최근 요르단은 1991년 걸프 전쟁으로 중단된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와도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후세인 왕은 민주주의로 요르단을 이끌기 시작했으며 이슬람행동 노선(무슬림 브라더후드와도 연계를 맺고 있으며 상당히 원리주의적인 정책을 가진)은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정당이 되었지만 1999년 후세인 왕의 죽음으로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왕은죽기 바로 몇 주전 장남인 압둘라 왕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경제

GDP: US$36,026,900
1인당 GDP: US$1373
연 성장율: 5%
인플레이션: 9%
주요 산업: 광물, 관광, 농업
주요 교역국: 인디아, 사우디아라비아, 유럽 연합

문화

요르단에는 아랍의 전통 음악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아랍 스타일의 가수가 서양 오케스트라와 전통악기의 반주에 노래하는 재미있는 혼합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베두인의 음악적 전통도 아직 남아있어서 한 명의 벨리 춤 무용수에 여러 남자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랍 세계의 시각 예술은 종종 건축을 의미하는데 이는 주로 이슬람교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묘사를 금하기 때문이다. 요르단 전체에 걸쳐 여행자들은 장엄한 모스크나 로마시대, 또는 그 이전의 고대 유적, 훌륭한 모자이크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쿠사이르 암라(Qusayr 'Amra)는 이슬람교에서는 드물게 목욕하는 나체 여인을 묘사한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 코란은 전통적인 아라비아 문학의 가장 좋은 예 중 하나이며 알무알라카앗(Al-Mu'allaqaat)은 더 오래된 아랍 시이다. 아랍 문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인 알프 라일라 와 라일라(Alf Layla wa Layla, 천일야화)는 여러 세기와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베두인의 예술품으로는 은세공품, 화려한 직물, 여러가지 칼 등이 있다. 환대는 아랍 생활의 기초이다. 이방인을 집으로 환대하는 것은 요르단 가정, 특히 사막 주민들에 있어 일반적인 것이다. 이 전통은 사막 생활의 황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음식과 물, 보금자리가 제공되지 않고는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요르단 어디를 가건 환영한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며 집으로 음식이나 차 초대를 종종 받게 된다.  이슬람교는 요르단의 지배적인 종교이다. 일신교인 이슬람의 성전은 코란이며 금요일은 안식일이다. 매일 하루에 다섯 번씩 이슬람 교인들은 전국에 산재한 모스크의 광탑에서 나오는 기도에 참배한다. 이슬람은 유태교, 기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슬람 교인은 대체로 기독교인과 유태교인들을 존중한다 - 이슬람에서는 예수도 알라의 한 예언자로 여기며 유태인이나 기독교인들도 성경에 나오는 이웃들로 생각한다. 모하메드는 마지막 예언자로 알라가 코란을 받아쓰게 한 사람이다. 아랍인이 아닌 체르케스인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요르단 이슬람교인은 순니파에 속한다. 체르케스인들은 다른 요르단의 소수민족인 체첸인들과 함께 원래 러시아의 코카서스 지방에서 온 민족이다.이슬람법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며 술을 마시는 것도 금한다. 이 법은 요르단전역에서 극단적으로나 아니면 덜 지켜진다(일반적으로는 덜 지켜진다). 이슬람은 또한 성에 따라 다른 역할을 부여하기 때문에 많은 식당이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이러한 곳들은 대부분 여자들의 경우에 '가족실'로 안내한다. 요르단인들은 외식할 때 보통 전채에 이어 주 식사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단체 식사를 시킨다. 아랍의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인 코브즈는 거의 항상 식사에 등장하며 다른 기본 식사로는 펠라펠(기름에 튀긴 병아리콩), 슈와르마(얇게 썰어 꼬챙이로 구운 양고기), 푸울(잠두, 마늘, 레몬으로 만든 반죽) 등이 있다. 멘사프는 베두인의 별미로 머리를 포함한 새끼 양 전체를 쌀, 송과와 함께 요리한다.요르단의 휴일은 대부분 이슬람교와 관계된 것들이다. 가장 큰 것은 라마단(날짜는 매년 변한다)으로 이슬람의 네 번째 계율을 따르기 위해 한달 간(12월 경) 해뜬 후부터 해질 때까지 모두 단식을 한다. 이 기간 동안 요르단에 있을 경우에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몹시 배가 고파진다는 것을 알아두자. 라마단은 에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라는 성대한 축제로 끝이 나며 이 때에는 누구나 같이 기도하면서 친구를 방문하고 선물을 건네주며 멍해질 때까지 즐긴다. 에이드 알아다(Eid al-Adah)는 다른 큰 행사로 언제 이슬람교인들이 메카로 성지 순례를 떠나야하는지를 알려준다. 비종교적인 휴일로는 독립기념일(5월 25일)이 있다.

축제 및 행사

대부분의 휴일은 종교적인 것으로 레바논에는 아주 많은 종파가 있기 때문에 축하할 일도 많다. 주요한 이슬람교의 휴일은 서양 달력보다 11일 정도 적은 음력 하지라 달력과 연관되어있으므로 이슬람의 휴일은 매년 11일 정도전에 있게 된다. 주요한 행사로는 라스 아스사나(Ras as-Sana, 새해), 모하메드의 손자가 암살 당한 것을 추도하며 쉬이테 이슬람교인들이 지키는 아쵸라(Achoura), 새벽부터 황혼까지 단식하는 라마단 등이 있다. 라마단 끝은 에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로 단식의 끝을 알리는 축제이다. 마론교의 수호 성인인 마르 마룬(Mar Maroun)은 2월 9일에 축하되며 기독교의 부활절은 서양달력으로 한번, 그리고 동방 기독교에 따라 다시 한번 열린다. 세속적인 휴일은 독립 기념일(11월 22일), 1996년 카나(Qana)에서 107명의 레바논 시민이 UN 캠프에서 이스라엘 폭탄에 의해 학살당한 것을 슬퍼하는 카나의 날(4월 18일)등이 있다. 좀더 즐거운 휴일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매년 7월의 발벡 아트 페스티발이 4일 동안 열린다.

여행자 정보

비자: 모든 외국인은 비자가 필요하며 요르단 영사관이나 입국시에 국경이나 공항에서 받을 수 있다. 비자는 입국 후부터 2주간 유효하지만 쉽게 3개월 간 연장할 수 있다. 비자 수수료는 국가에 따라 달라서 호주인은 $45, 미국인은 US$60, 어떤 나라는 무료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국경 주위에서는 자주 군인들의 검문이 있으므로 여권을 항상 휴대하도록 하자.
보건 위생: 특별한 위험은 없지만 간염, 소아마비, 파상풍,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예방
                접종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시간: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전압: 220V, 50Hz
도량형: 미터법(도량형 환산표 참조)

경비 및 환전

통화: 요르단 디나르
일반 경비:
저렴한 숙소: US$5-7
중급 호텔: US$20-30
고급 호텔: US$30-50
저렴한 현지 식사: US$1-2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US$5-7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US$7-18
요르단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비싼 축에 끼며 이스라엘보다 싸지만 이집트보다는 비싸다. 하루에 $15로 생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런 생활은 펠라펠만 먹고 거의 최소한의 경비로만 생활해야만 한다.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때때로는 더운물로 샤워를 즐기려면 하루 $20정도를 계획하자. 좀더 고급스러운 여행으로 하루에 두세 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욕실 딸린 방에 하루에 적어도 한번 관광지를 둘러본다면 예산은 $50으로 올라갈 것이다.요르단에서는 환전이 크게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은행은 여행자 수표를 받아주며 중동의 브리티쉬 은행에서는 유로체크도 받아준다. 어디서건 수표 환전 수수료로 JD5을 징수한다. 아메리칸 엑스프레스는 가장 잘 통용된다. 요르단 돈은 얼마든지 가지고 들어갈 수있으므로 좋은 환전율로 바꿀 수 있다면 제때에 바꾸는 것이 좋다.최고급 레스토랑은 10%정도의 팁을 바라지만 다른 곳들은 팁이 필요 없다. 흥정은 특히 기념품 가게에서 필수이지만 원래 가격보다 크게 깎지는 못할 것이다.

여행 시기

요르단 방문에 있어 가장 좋은 시기는 봄과 가을로 여름을 뜨거운 햇빛과 겨울의 얼음같은 바람을 피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겨울은 아주 춥지만 홍해와 아카바는 쾌적하다. 다른 중동 지역도 같이 여행할 계획이라면 봄에 북쪽 터키로 가거나 가을에 남쪽 이집트로 가는 것을 생각해 볼 만하다.  

주요 여행지

암만(Amman)

암만은 요르단의 수도지만 사실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바쁘고 혼잡한 교통과 엉성한 도시 계획에도 불구하고 모든 길은 암만으로 통하기 때문에 이곳에 당분간은 묵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5000년은 된 암만에는 성채나 공공 광장과 같은 로마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암만의 시내는 이 도시의 많은 언덕 중 네 곳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싼 호텔과 은행, 볼거리들이 몰려있다. 멋진 숙소나 레스토랑, 대사관 등은 가장 큰 언덕인 제벨 암만(Jebel Amman)에 있다. 결점에도 불구하고 암만은 매우 유쾌한 도시로 여행하는도시 중에서 가장 친절한 곳 중 하나가 될 것이다.시내 바로 동쪽에 있는 보수된 로마 시대의 극장은 남아있는 로마 유적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다. AD 2세기에 세워진 이 극장은 6000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으며 한때 거대한 묘지로 쓰였던 언덕의 한쪽면을 파고 들어가 있다. 동쪽으로는 동시대에 세워진 오데온이 서있으며 주로 음악 공연에 이용되었다. 이 도시의 주요 분수탑은 서쪽에 있다. 이들 유적의 같은 언덕 북쪽에는 로마 성채가 남아 있는데 로마시대에 백부장의 주둔지로 쓰였다. 대부분의 건물은 현재 돌무더기에 불과하지만 로마, 비잔틴, 이슬람 양식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또한 국립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로마 유적을 제외하고는 암만에서 볼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민속 박물관과 전통 보석&의상 박물관은 둘 다 로마 시대 극장에 있으므로 들어가 보자. 시 북쪽에서는 무명 용사 기념비와 요르단의 군사 역사를 다룬 조그만 박물관을 볼 수 있다.암만 시내는 JD 1.5에서 시작하는 싼 호텔들이 아주 많다. 또한 슈와르마를 파는 노점상이나 싼 식당, 서구 스타일의 패스트푸드 음식점, 그리고 중국음식점까지 있다. 또 이 지역에는 술을 마실 수 있는 펍도 있다. 북서쪽으로 가면 쉬메이사니(Shmeisani) 바깥에 질에 비해 비싼 서양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나 비싼 아랍 음식점들이 있다. 고급스러운 곳들을 찾으려면 시내 서쪽에 있는 제벨 암만으로 가보자.

제라쉬(Jerash)

암만의 유적으로 호기심이 자극되었다면 50km 북쪽에 위치한 아름답게 보존된 로마시대의 도시, 제라쉬로 가보자. 이곳은 대략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한때 중동전역에 걸쳐 열 개 도시의 상업 동맹이던 폼페이 황제의 데카폴리스(Decapolis)에 속해 있던 곳이다. 제라쉬는 3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기독교인과 이슬람인들의 계속되는 침입과 747년의 지진으로 쇠퇴해갔다. 1920년대에 발굴이 시작되었지만 이 도시의 10%밖에 발굴되지 않았다. 제라쉬의 입구는 한때 개선문이었지만 현재는 남문이 되어있다. 성벽 안에는 제우스 신전과 특이하게 타원형 모양을 한 공공 광장이 있다. 신전 뒤에는 남쪽 극장이 있는데 1세기에 세워졌으며 한때 5000명의 관객을 수용하고 북쪽까지 600m 길이의 주랑을 갖춘 길이 있다.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은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바로 중앙에 있다. 제라쉬에는 묵을 곳이 없고 식사나 길거리의 간단한 음식들도 꽤 비싸다. 암만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쉬우며 서비스 택시나 미니버스가 압달리(Abdali)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한다.

페트라(Petra)

페트라는 더 이상 높게 평가할 수 없는 곳이다. 요르단, 아니면 전 중동에서 이곳처럼 매혹적인 곳은 없을 것이며 페트라의 주민들도 이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만한 값을 요구할 것이다. BC 3세기경의 아랍 왕조인 나바테 왕조의 수도였던 페트라는 절벽을 깎아만든 놀라운 도시이다. 1000년이 넘게 잊혀져 있다가 겨우 1812년 발견된 페트라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와 마지막 십자군에서 등장했다. 발견 후부터 1980년대까지 이곳은 여러 베두인인들이 살았으나 이들에게 불만스럽게도 이주하도록 조치가 내려졌다. 매일같이 3000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므로 조용하고 명상적인 관광은 바라기 힘들다.이곳을 제대로 보려면 2,3일은 있어야 하며 이것은 입장료 JD20을 한번 이상 내야한다는 말이 된다. 깊은 협곡에 위치해 오직 좁고 구불구불한 바위 틈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페트라는 회색과 황색 띠가 둘러진 오래된 빛깔의 사암을 파서 만들어졌다. 가장 유명한 유적은 카즈네(Khazneh)로 바위틈을 지나 들어가면 처음 보게 되는 아름답게 조각된 정면이다. 수도원도 마찬가지로 인상적이며 정상으로 올라가면 아주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다른 유적으로는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과 아직도 발굴 중인 날개달린 사자의 신전 등이 있다. 페트라를 둘러싼 지역은 급격하게 개발 중에 있다. 페트라 자체와 주위 마을인 와디 무사(Wadi Musa)는 호텔들로 넘쳐흐르며 더 많은 호텔들이 건설 중에 있다. 식당들도 많으며 길거리 노점상들이 모인 시장에서 비싼 레스토랑까지 다양하다. 숙소에 묵지 않을 경우에는 암만에서 150km 거리를 당일치기로 여행할 수 있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정말 없는 경우에만 이용하는 것이 좋다.

마다바(Madaba)

이 편안한 작은 마을은 암만에서 30km 남쪽에 있으며 6세기의 팔레스티나를 그린 모자이크 지도인 '마다바 지도'를 포함해 아름다운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2백만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마다바 지도는 나일강과 사해, 예루살렘, 예수의 무덤에 세워진 교회 등을 그리고 있다. 마다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 모자이크는 그리스 정교회 교회인 세인트 조지(St George) 교회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마다바는 7세기의 성모와 예언자 엘리아스의 교회, 더 오래된 히폴리투스(Hippolytus)홀 등을 포함해 현재 조심스럽게 복구 중인 고고학 공원에 있다. 이 홀은 페드라(Phaedre)와 히폴리투스의 비극을 묘사한 훌륭한 모자이크가 있다. 마다바에는 묵을 곳이 몇 곳 있으며 아니면 암만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갈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움 알지말(Umm Al-Jimal)

아무도 시리아 국경에서 10km, 마프라크(Mafraq) 동쪽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 도시가 언제 세워졌는지 알지 못한다. 이 이상한 검은 현무암 촌락은 하우란(Hauran)시에서 남쪽에 위치해 있다. 대략 AD 2세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생각되며 한때는 로마 제국 아랍 전초기지의 방어선 중 일부였다. 우마이야드 시대에 들어서 계속 번창했지만 747년에 요르단을 강타한 지진은 움 알지말을 싹 쓸었으며 이 도시는 다시는 재건되지 못했다.  남아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한때 일반 시민들의 가옥이나 상점이었던 것이다. 몇 안 되는 큰 건물들 중에는 병영과 교회 건물이 합쳐진 곳이나 웨스턴 쳐치(Western Church)로 알려진 유적 등이 있다. 움 알지말은 암만에서 당일치기로 다녀 올 수 있다.

사막 성 루프(Desert Castle Loop)

암만 동쪽의 사막에 있는 이 성들은 7세기 우마이야드 왕조의 작품들이다. 몇몇은 원래 로마 시대의 건물이었으며 다른 것들은 나바테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성들을 돌아보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차나 택시를 빌리는 것이다. 주요 성들만 보려면 하루정도면 되고 도로에서 멀리 갈 필요도없지만 전체 성들을 보려면 이삼일 정도에 차와 가이드가 필요하다.카스르 알할라밧(Qasr al-Hallabat)은 원래 로마 성채였지만 우마이야드 왕조가 점령한 후 별궁으로 바꾸었다. 도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함맘 아스사라크(Hammam as-Sarakh)는 목욕탕과 사냥 오두막이다. 이 건물들은 거의 완벽하게 복구되었으며 더운물과 증기를 위해 이용되던 관을 볼 수 있다. 암만에서 100km 떨어진 오아시스 마을 아트라크(Azraq)는 검은 현무암으로 지은 커다란 성이 있다. 이곳은 아랍 혁명 당시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본부였다. 암만을 향해 되돌아오는 길에 있는 쿠사이르 암라(Qusayr 'Amra)는 사막 성들 중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프레스코화로 덮인 성벽이 있다. 

와디 룸(Wadi Rum)

와디 룸은 세계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극적인 사막 풍경을 가진 곳 중 하나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아랍혁명 중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영화 장면 중 상당부분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넓게 펼쳐진 모래 언덕은 볼 수 없지만 야릇한 풍경, 제벨로 알려진 솟아오른 바위 형상 등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여행자가 방문하지만 가까이하기 어려운 위엄은 변함이 없다. 유일한 주민은 4000명의 마을 사람들과 베두인 유목민이며 유일한 건물은 거위털 천막과 몇 곳의 콘크리트 상점과 가옥 그리고 사막 순찰대의 본부 건물뿐이다. 호텔은 없다.  룸 마을 주위에는 볼거리들이 몇 곳 있다. 로렌스의 우물은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2km 떨어져있다. 우물은 단지 괴어있는 웅덩이에 불과하지만 풍경은 놀랄만하다. 제벨 룸의 기슭에는 더 예쁜 샘이 있다. 페트라를 세운 나바테 제국은 룸에도 폐허가된 사원을 남겼으며 이 지역은 타무딕(Thamudic)과 쿠픽(Kufic) 바위 예술품으로 덮여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진짜 매력은 사막 그 자체로 차나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가야한다. 몇몇 사람들은 단지 몇 시간만 지내고 오지만 가이드를 동반하는 경우 베두인 가정에서 묵거나 사막에서 캠핑을 하면서 며칠 여행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레저스포츠

사우디 국경까지 내려간 아카바 남쪽(요르단 남단)의 연안은 세계 최고의 다이빙 장소 중 한곳이다. 아카바 만에는 열대어나 산호가 많이 모여있다. 아카바에는 적어도 네곳의 다이빙 센터에서 초보자를 위한 PADI 코스를 제공한다. 하이킹을 하려면 페트라나 와디 룸 근처를 시도해 보자. 와디 룸은 또한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장비를 가지고 등반을 즐길 수 있다. 와디 룸 근처로는 낙타 트레킹을 떠날 수도 있다.

요르단으로 가는 길

암만의 국제 공항은 베이루트, 카이로, 다마스쿠스(Damascus) 그리고 다른 여러 곳으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한다. 출국세는 JD10이다. 암만과 다마스쿠스(약 7시간) 사이의 버스나 바그다드(Baghdad,14시간), 제다(Jeddah), 담맘(Dammam), 리야드(Riyadh, 약 24시간)까지 가는 버스도 있다. 예루살렘까지는 간접적으로 갈 수 있으며 아카바에서 에일랏(Eilat) 사이는 직통 버스가 다닌다. 요르단에서 시리아나 이라크까지는 서비스 택시가 운행되며 암맘에서 다마스쿠스까지는 기차(월요일만 운행)도 다닌다. 출국세는 JD4(강 서안은 무료)이다. 배나 버스 서비스는 아카바에서 카이로까지 운행되며 아카바에서 시나이(Sinai)의 누웨이바(Nuweiba) 사이는 빠른 배가 다닌다. 출국세는 JD6이다.

국내 교통편

유일한 국내선 노선은 암만과 아카바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JETT 버스 회사는 암만에서 아카바, 후세인왕 다리, 페트라, 함마맛 마인(Hammamat Ma'in)을 운행한다. 개인 버스는 암만에서 이르비드(Irbid)와 아카바까지 오간다. 미니버스는 작은 도시들 사이를 비정기적으로 운행한다 - 보통 좌석이 다 차면 출발한다. 서비스 택시는 대부분 같은 노선을 운행하며 미니버스보다 비싸지만 훨씬 빠르다.